(섬진강 꽃 구름)
매화강이라 부르리!
드디어, 꽃의 계절이다.
꽃!
이 말을 듣고 가슴 찡하지 않을 사람 어디 있겠는가?
꽃을 두고 화를 품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꽃을 두고 저주의 말을 할 사람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한 송이 꽃이 되어 준다면 세상은 어떨까?
세상 어디에 가슴 찡하게 하지 않을 사람 있겠는가?
꽃이 되어야 한다.
향기가 있어 준다면 더 좋을 것이다.
벌과 나비가 찾아와 준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꽃이 아니면 벌이라도 되어야 한다.
향기를 뿜어대는 꽃,
향기를 찾아 날아드는 벌,
향기를 시샘하지 않고 찾아드는 벌도 꽃 못지않은 향기다.
나는 꽃인가? 나비인가?
아니면 가시가 되어 꽃을 찌르고 상처를 입히지 않았는지 뒤돌아 볼 일이다.
꽃 중에서도 매화는 꽃 중의 꽃이다.
섬진강에 봄이 옴은 매화가 피었을 때 할 말이다.
제 아무리 봄이 왔다고 노래 불러도 매화가 없는 봄은 봄이 아니다.
매화는 이런 노래를 하지 않을까?
내가 꽃이 되었음은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차가운 북풍한설로 나를 매몰차게 몰아 붙였기 때문이고,
무서리가 되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되어 나를 태웠기 때문이고,
바람과 폭풍이 되어 나를 흔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꽃으로 있음은 네가 있어주었기 때문이다.
(매화에게로 가다!)
섬진강과 어울리는 꽃은 단연 매화다.
매화는 죽음과도 같은 고목에서 피어날 때 가장 아름답다.
속이타고 타다 못해 숱처럼 변해버린 그 몸둥아리에서 피어난 매화라야
진짜 매화다.
오늘, 섬진강이 구름에 잠겼다.
꽃구름이다.
상상해 보라. 꽃구름속의 섬진강을!
간밤에 비가 내려 아침안개와 함께 섬진강은 꽃구름 속에 잠겼다.
나는 섬진강을 매화강(梅花江)이라 부른다.
단지 섬진강변에 매화가 많이 핀다는 것만이 아니다.
섬진강이 매화를 닮았는지 매화가 섬진강을 닮았는지는 알바 아니지만
섬진강의 인내와 결코 화려하지 않으면서 향기를 발하는 자태가 닮았기 때문이다.
홀죽한 배, 굽어진 허리, 빼빼마른 탯줄과도 같은 섬진강은
생명이 없을 것 같은 마른 가지에서 꽃을 피워내는 매화와
앞니 빠진 할머니의 홀죽한 입에서 피어나는 함박웃음과도 닮았다.
그래서 섬진강가에 핀 매화라야 진짜 매화다.
매화가 가장 빨리 피는 곳은 하동 선장마을 옆 묘지 언덕배기다.
이곳은 아무리 추운 날씨라도 2월 말이면 매화가 움이 튼다.
그래서 전국 언론사들이 가장 먼저 카메라를 둘러메고 찾는 곳도 바로 이곳이다.
조금 더 국도 19호선을 타고 올라가면 흥용마을은 하동의 매화 원조격이다.
섬진강을 바로 코앞에 둔 이 마을은 섬진강과 뿌리를 같이하고 있다.
집에 앉아서도 섬진강 물을 퍼 마실 정도로 가까이 붙어 있어서
이 마을 사람들은 섬진강과 그 혈맥을 같이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흥룡마을에서 산길로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먹점마을이다.
먹점마을은 그 땅 밑에 매실 神이 살아 있어 마을의 기운을 북돋우는 것 같다.
매실 나무 외에는 다른 나무는 하나도 없어 보인다.
매실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 이곳이리라!
개치마을은 옛날에는 제법 큰 나루터였다. 지금도 그런 흔적들이 남아 있다.
개치나루에 핀 매화는 떠나보냄에 익숙해 있다.
개치나루에 매화가 떨어져 강물에 떠내려가는 날이면
섬진강에 봄은 익고 떠났던 님도 돌아왔을 것이다.
신기, 중기, 영당마을에는 차나무 밭에 듬성듬성 서 있는 매화나무를 볼 수 있다.
완전초록과 대비되는 연분홍의 매화와의 환상의 조화를 상상해 보시라!
나는 이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 이름도 유명한 화개장터에서 남도대교를 넘으면 전라도 구례 땅 하천마을이다.
(차와 어울리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몇 걸음만 걸어가면 광양 땅이다.
그러니 이 남도대교는 3개 시군이 서로 만나는 접점이다.
나는 매화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광양으로 내려간다.
개각, 직금, 금천마을을 지나자니 산언덕배기는 물론 강가 사질토 땅에는
온통 매화로 넘실댄다.
세상의 매화는 모두 이곳에 다 모였다 싶다.
이윽고 매화마을이다.
마을이 구름 위에 떠 있는 모습이다.
마을이름도 매화마을로 개명을 해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마을이 되었다.
매화마을이 매화마을 된 것은 오로지 한 사람의 선견자적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홍쌍리여사는 부산사람으로 일찍이 전라도로 시집와서 홀로 매실나무를 심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밤나무는 집안을 일으키는 일등작목이었다.
어떤 생각에서였는지 모르지만 밤나무를 베어내고 매실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매화마을이 된 것이다.
홍쌍리 여사를 만나면 매화를 본 듯하다.
그러나 그의 손을 맞잡아 본 사람은 이내 그의 손이 세월 속에 검게 타 버린
매화나무와 닮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손에서 매화가 피어날 것 만 같았다.
그의 피 속에는 매실향이 흐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 분의 모든 것은 매화다.
(매화마을로 가다)
매화마을에서 바라본 섬진강, 그리고 그 건너 하동 선장마을,
이 두 마을은 섬진강을 대표하는 매화마을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이 없다. 이 두 마을에서 세상의 봄은 시작되기 때문이다.
누가 섬진강을 영호남을 나누는 강이라 했는가?
매화마을 꽃구름 속에 서 보라!
선장마을 묘지 옆 언덕배기 매화 밭에 서 보라!
매화는 약속을 하지 않아도 같이 피고 같이 진다.
봄비에 젖어 섬진강으로 떨어지는 찬란한 모습까지 아름다운 섬진강 매화,
이제 섬진강은 매화강(梅花江)이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