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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루 8월호] 사진으로 본 민족문화말살의 현장
캐슬    2014-08-31 죄회수 4,114 추천수 1 덧글수 1  인쇄       스크랩     신고


▲사진제공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라를 일은 슬픔, 시대에 따라야만 했던 그 시절,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뼈아픈 한국사를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글마루에서~~


평양기생학교에 분 왜색의 바람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그토록 기다리고 염원하던 광복을 맞았지만 69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아직 온전한 광복을 이루었다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못한 채 사회 곳곳에 숨어있듯 남아있는 식민사관은 잘못된 역사관뿐 아니라 우리의 문화마저도 왜곡시켰다. 광복 69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바로 알아 진정한 광복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기획을 마련했다.


본래 우리네 기녀는 시와 서(書)에 능했으며, 전통악무(傳統樂舞)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이들이었다. 비록 사회계급으로는 천민에 속했지만 시와 서에 능한 교양인으로 대접받는 특별한 존재였으며, 글 꽤나 한다는 양반이나 문인들보다 그 재능이 뛰어난 이들도 많았다. 조선 말기를 지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기녀의 문화에 변화가 일고 그 의미가 왜곡됐지만 말이다. 일제강점기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평양기생학교’에도 그렇게 일제에 의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평양기생학교 출신의 장연화는 1920년대 중앙문단에 내로라하는 문사들이 말 한번 걸어보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웬만한 문인을 능가했던 문학 기생이었다. 이렇듯 평양기생학교 출신의 기생들은 최고의 기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았으며, 그 기량 또한 뛰어났다. 이들은 논개와 춘향, 황진이와 같은 의기(義妓)와 정절, 예인(藝人)의 대명사들을 롤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이 때문이었을까. 일본과는 다른 조선 기녀들의 모습에 자존심이 상해서였을까. 일본은 평양기생학교에까지 침투해 그 고유의 문화를 변질, 왜곡시켰다.


출처: 글마루 //www.geulmaru.co.kr/bbs/board.php?bo_table=issue&wr_i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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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교주   2014-09-09 09:03 수정삭제답글  신고
슬픈역사 없애려하지 말고 보존하며 배워야 합니나
사진을 편리하게 관리하세요. 포토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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