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광해군-인조 때 영의정을 여섯번이나 지내고 청백리로 이름이 높던 분? 누구일까요?
오리 이원익 대감이 살던 집 관감당에서 연극이 펼쳐집니다.
인조5년에 비가 새는 집에 사는 이원익에게 임금은 새 집을 하사하였고, 그 집 이름은 관감당(觀感堂)
바라볼관, 느낄감, 집당..
백성을 바라보고 함께한다는 정신이 그 의 삶을 대변해 줍니다.
문화재청의 지역문화재활용사업 <오리 이원익 청렴의 고향을 찾아서>
오리 이원익 종택, 충현박물관, 관감당, 오리서원, 이원익묘역, 이원익영우 등 고택을 돌며 그 분을 배우고 지역문화재 참뜻을 깨닫는 시간..
예술이 있는 역사인물 스토리텔링이고, 문화재에 서려있는 이야기를 劇化하여 일반에 알리는 인물마케팅 콘텐츠랍니다. 고택종갓집활용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입니다.
오리 이원익(1547~1634)
조선시대 통틀어 최고의 청렴결백 능력출중 영의정이라 할 수 있지요.
정치기반이 서로 완전히 다른 세력에 의해 왕권을 쥔 광해군과 인조가 어떻게 공히 첫 영의정을 이원익이라는 동일 인물을 선택했을까,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청렴한 남편 나랏일 한다고 돌봄을 받지 못한 부인 영일정씨는 1603년에 돌아 기십니다. 그 뒤로 30년 뒤에 남편은 부인 곁에 묻히게 됩니다.
인조22년(1624) 이괄의 난 때에 공주로 피란하는 임금을 모셨고, 정묘호란(1627) 때에는 세자를 호위하여 전주 갔다가 강화도로 와서 인조 임금을 호위했답니다. 향후 사직을 하여 이 곳 오리곡(梧里谷)으로 낙향했습니다. 88세가 되던 1634년 별세하게 됩니다. 워낙 나라에 큰 일을 많이 했고 추앙을 받아 인조의 사당에 함께 모셔지게 되고, 빈소에 소현세자가 조문도 했다는 기록이 있지요. 현재는 묘역과 사당도 이 곳 오리곡(광명시 소하동)에 있답니다. 도로명도 그의 호를 따서 "오리로"라 하여 이 일대를 지나갑니다.
오리 이원익의 청렴정신을 기초테마로 하여 청렴 인문학과 관감당 고택 한옥모형 공학의 통섭형 배움의 시간이 되는 이 프로그램은 지역 공연전문단체 ‘창작의 숲’이 주제극인 뮤지컬과 마당극 상황극 등을 펼쳐 줍니다.
관객과 배우가, 무대와 객석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극이나 이머시브 공연 형식이 소규모 축제에는 잘 맞는 것 갑습니다. 코로나19로 움츠리지 말고 대형무대 트로트 가수 고집하지 말고, 살금살금 축제를 할 떄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