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申崇謙) 장군 유적지
대구광역시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1호
고려 개국공신인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자리
신숭겸 장군은 평산신씨의 시조로 전라도 곡성에서 태어나 光海州(지금의 춘천)로 옮겨 살았는데 918년 궁예(弓裔)를 내몰아 폐하고 왕건(王建)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공(公)은 그 뒤 대장군이 되어 927년(고려 태조10)에 신라를 침공한 후백제 견훤의 군사와 싸우게되는데, 왕건이 이 곳 공산싸움에서 견훤의 후백제군에 완전 포위 당하자 자신이 왕건의 옷을 입고 왕건으로 가장하여 싸우다 전사하였으며, 왕건은 장졸의 옷을 입고 탈출하였다고 한다.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겨 그의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에서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신숭겸이 전사한 이곳에 순절단과 지묘사를 세워 그의 명복을 빌게 하고, 일품전지 삼백묘 토지를 이 곳에 내려 주었다. 1607년(선조40)에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지묘사 자리에 서원인 충렬사를 건립하였으며, 1672년(현종13)에 표충사는 서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고종8)에 서원철폐령으로 표충사가 없어졌고 후손들이 이곳을 지켜오다가 1993년에 표충사를 복원하였다.
표충단: 1607년 후손인 신흠과 외손인 경상도 관찰사 유영순이 장군이 전사한 자리에 세운 단
순절비각: 1819년(순조19) 신숭겸의 28대손 신의직이 대구영장으로 부임했으 때 이 비를 세움
독좌암: 왕건이 피난 길에 잠시 앉아서 쉬었던 바위
신숭겸동상: 신숭겸장군이 왕건의 명에 따라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는 모습
표충사: 신숭겸장군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진 곳
상절당: 신숭겸장군의 높은 기개를 추모하 건립
표충재: 1607년(선조40년) 건립됨
충렬비: 1607년(선조40년) 류영순이 장군의 공의 혼을 위로하기위해 건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