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의 이바구길 8개 코스 중 가장 짧은 거리
이중섭의 범일동 풍경
8개 걷기길은 (동구이바구길) : 초량이바구길(1.5Km) 호랭이이바구길(1.5Km) 부산이바구길(1.7Km) 이중섭의 범일동풍경(0.4Km) 씽씽로드 둘레길(9.4Km) 수정이바구길(2.1Km) 좌천이바구길(2.2Km) 부산포개항가도(0.7Km)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이중섭갤러리 - 거리미술관 범일동풍경 - 희망길 100계단 - 이중섭쉼터 - 이중섭전망대
이중섭전망대에는 카페가 있고 건너편 만리산 고개 산복도로 호랭이마을 가는 이바구길이 보인다.
산복도로 (山腹道路)는 산(山)의 중턱(腹)을 지나는 도로인데, 우리에겐 산동네길이나 달동네길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감이 가지 않을까? 아니면 부산의 산토리니라고 부르던가..
그리고 여기저기 써 있는 이중섭의 편지글이 많다.
읽다보면 눈시울이 붉혀진다.
한국인으로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서양화가 이중섭.
이 곳을 걸으며 이중섭 작품들을 보며 편지글을 읽으며 그의 길지않았던 생을 되새겨 보게 된다.
대향(大鄕) 이중섭(李仲燮, 1916-1956) 은 평안남도평원의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주를 보인다. 서울 종로에서 보통학교를 다녔으나 평양고등보통학교 시험에 떨어져 오산학교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미술인생이 시작된다. 미술교사 임용련 선생님을 만나 드로잉을 많이 하게 된다.
1935년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제국미술학교에 들어가게 되고 또 분카가쿠엔(文化學院) 미술과로 옮겨 공부하며 여기서 강한 야수파의 스킬을 깨우치게 된다.
일본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한국명 이남덕)를 만나게 되고 1945년 함경도 원산에서 결혼하게 된다. 두 아들 태성(47년생)과 태현을 낳고 살며 원산사범학교 미술 교사로 일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종군화가 단원으로 일하게 된다.
생활고에 찌든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고 이중섭은 홀로 부산에서 피난생활하며 사는데 가족사랑이 남달라 계속 편지를 보낸다. 그는 통영에서도 살았고 제주 서귀포에서도 있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물고기가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1953년 일본으로 건너가 잠깐 가족들을 만났으나 일주일도 안되어 귀국한다. 이후에도 계속 가족을 그리며 그림을 그리다가 몇 년 후인 1956년 병이 걸려 만 40세의 나이로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