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고의 재즈페스티벌이요 대한민국 문화관광 대표축제로 성장한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올해(2016년) 13번째로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열린다. 공연예술형
축제가 대표축제로 선정되기는 이 축제가 처음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이지 않은 재즈와 월드뮤직으로
음악축제를 대한민국에 뿌리내리게 한 인재진(印在鎭) 감독은 이 시대 문화기획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인재진의 이름 이니셜 JJ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음악축제감독 반열에 오른 그는 재즈페스티벌 기획자로서 성공한 모습으로 축제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도 많이 한다.
오늘은 사단법인 문화기획학교(이사장 조정국)의 인재진 사랑방이라는 대화형식의 강의를 통해 그를 간접 인터뷰해 본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의 성공 뒤에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음을 이야기 한다. 한
때 자신의 별명이 ‘흥행업계의 마이너스 손’ 또는 ‘희귀음반 전문제작자’ 였다며 ‘청춘은
찌글찌글한 축제다’ 라는 책을 쓴 인재진은 성공한 무대 뒤의 위대한 실패의 기록들과 찌글찌글했던 시절들을
이야기했다. 그는 말한다. 문제가 있을 때 돈을 들여 해결하는
방법과 욕먹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으나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문제는 소통의 부재로부터
생긴다고 한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첫 화두를 띠웠다.
Q: 새로 생긴 축제는 처음 3~4년을 넘기기가
쉽지 않은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올해 제13회를맞는다. 처음
3~5회때 어려웠다고 들었는데 그 때 끌고 간 힘은 무엇이었나?
A: 자라섬재즈페스티벌 회사의 사훈이 ‘꾹 참자’이고, 또 하나는
‘안되면 말고’다. 꾹
참고 그 날이 올 때까지 기다린 게 성공요인이다. 야외음악의 수요가 커짐을 일찌기 깨달았다. 음악축제의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내 생각보다 좀 늦게 오나 보다’하면서 항상 축제를 기획 연출하고 Organizing하는 감독으로서 1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봤다. 바로 지금 모습이 그 때 꿈꾸던 그림이어서 나는 지금 아주 만족한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어려움도 많았다. 7년간 신용불량자로 힘든 생활도 했었고 어머니 집까지 팔아서 기획사업을 하던 어려운 시절은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어려웠을 때 재즈페스티벌을 끌고 갈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자신감과 꿈을 놓지 않고 노력했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제5회와 6회를 거치며 손익분기점(BEP)을 넘어섰다.
Q: 축제감독이란 직책이 어떠한 매력을 가졌기에 시작했는가? 더구나 음악축제감독을..
A: 20년전 지방자치제가 태동하면서 축제는 우후죽순 생겨났다. 사실 그 전에 우리나라에 변변한 축제가 없어서 공부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축제감독으로
일하고 싶게 만드는 롤모델이 없었고 축제예산도 공공자원을 쓸 수 밖에 없는 구조라서 생존방식을 나름대로 만들어 가야 했다. 그러나
음악축제는 좀 달랐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다행히 대한민국에 음악축제도 많이 생겼다. 음악축제
감독들의 백그라운드는 대부분 공연기획자들이다. 그 사람들이 페스티벌의 트렌드를 읽은 것이다. 극장공연에 타격을 주기도 했지만 공연예술축제 중 음악축제가 가장 많고 규모가 크다. 확장성이 크다는 의미다. 그래서 음악축제감독이 된 것이다.
Q: 우리나라 재즈페스티벌의 생명력은 좋다고 보는가?
A: 연극제 영화제는 무대가 보여야 하지만 음악축제는 무대가 안보여도 되기에 좋기도 하다. 무대가 안 보이는 곳 잔디밭에서 음식 먹고 있어도 음악이 들리기 때문이다.
Rock Spirit처럼 Jazz spirit도 있다. 출연료가
팝아티스트나 락아티스트 만큼 비싸지 않아 좋다. 락페스티벌 헤드라이너 한 사람에게 지불하는 출연료가
재즈페스티벌 전 출연자의 그 것과 맞먹는다. 경비가 덜 든다는 뜻이다.
재즈페스티벌은 또 솔로연주자를 돋보이게 해주는 배려와 협연자와의 융화가 생명이라서 인문학적으로 끌림이 있다. 해마다 4월 30일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재즈의 날인데 올해도 백악관에서 행사를 했다. 모건 프리먼이 사회를 보고 오바마 대통령이
나와 격려도 해주던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지 않은가. 재즈페스티벌의 생명력은 튼튼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세계 재즈 아티스트들과 교분이 아주 두터워졌다. 내
나름대로 재즈 뮤지션들과의 끊임없는 교류가 있었고, 천 번이 넘는 재즈무대 관람을 통해 아티스트 섭외 능력도 쌓게 되었다. 이제는 나에게도 좋은 아티스트를 싸게 모셔오는 재주가 생긴 것이다.
Q: 우리나라 많은 축제들이 자생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하루에 만명 이상이 비싼 티켓을 사서 축제장에 들어 온다는데 축제예산이 궁금하다.
A: 예산은 약25억원 정도이고 상시 인력 Staff은 15명(인턴직원 3명 포함)이다. 예산의
수입구조는 공공예산 33%, 티켓발매 33%, 기업후원 33%, 머천다이징 1%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구조는 좀 위험하다. 첫 3년동안 (제1회~3회) 빚을 졌다. 일반적으로
축제감독들은 3억 예산인데 5억 행사를 만들어 2억을 뒤에 만들어 낸다고 예측하지만 스폰서쉽
등 예상했던 후원금이 안 들어오면 수익성에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우리는 자생력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첫해부터 티켓을 유료 발매했다. 작게 1만원씩 발권했지만
상징적으로 有料化는
필요했다. 제5회 6회
지나며 직원들 급여를 줄 수 있었다. 그 전엔 18개월을
연속 못 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직원들이 나가지 않고 버텨줬고 계속 함께 해줬다. 너무 고마웠다. 제7회 ~9회 한꺼번에 계 타듯이 밀린 급여를 받아갔다.
Q: 축제는 성공궤도에 올라 갔는가? 본인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가?
A: 축제는 어느 정도 성공궤도에 안착해 있다고 본다. 올해
온 사람이 내년에 또 오게 하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축제의 재방문율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일찍 조기매진 되어 간다. 올해는 개막 1주일 전에 매진 되리라 생각한다. 내 인생도 성공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감사할 뿐이다. 내가 10여년 전에 생각했던 미래 모습에 지금 거의 근사치에 와 있다. 매년 4월에 독일 브레멘에서 세계최대의 재즈엑스포마켓인 재즈 어헤드(JAZZ
AHEAD!)가 열린다. 과거에는 내가 유명 재즈 전문가 형님들 만나러 다녔는데 이제는
세게 각국의 동생들이 인재진을 만나러 온다. 이 정도면 성공한 것 아닌가. 찌글찌글했던
날들을 기억하기에 오늘 가장 기분이 좋다.
Q: 비싼 입장권을 내고 들어 가는데 자라섬재즈페스티벌, 올해 축제는 어떻게 예상하는가?
A: 올해도 15개 무대 중에 2개의 유료무대와 13개의 무료무대가 올려진다. 입장권은 작년보다 2천원 오른 5만원으로
책정되었다. 실제는 12만원 받아야 하지만 공공예산이 투입되기에
혜택을 받게 하여 5만원 부담을 하게 하는 것이다. 콩쿨도
치르고, 지역주민 함께하는 부대프로그램도 많다. 지역경제
활성화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찾아가는 자라섬재즈, 가평밴드콘테스트, 자라섬뱅쇼와 재즈막걸리, 가평팜파티 in JAZZ 등 많은 참여형 프로그램들이 부대행사로 펼쳐진다. 올해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다. 해마다 주제를 달리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국가별 포커스 프로그램 심화 진행하는 게 특징이다. 내년엔 이스라엘, 후년엔 영국을 Focus Country로 지정하여 그 나라 음악을
중점 소개할 것이다. 미국의 NPR Music의 jazz 칼럼에 이런 기사가 났다. ‘무엇이 수많은 청춘의 발을 자라섬으로
이끌었는가? 이제 미국의 페스티벌들도 자라섬에서 유연한 방식을 배워야 한다. 재즈의 미래가 자라섬에 있다’.
Q: 축제운영과 관련하여 내적인 강점으로 무엇을 들 수 있는가?
A: 축제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구전(입소문마케팅)으로 온 게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인터넷(온라인마케팅)이라고 한다. 항상 그래왔지만 출연진 Line-up이 훌륭하다. 프로그램이 충실하기에 입소문이 난다는 뜻이다. 그리고 디테일의 중요성을 들고 싶다. 축제는 사고없이 잘 끝나면
된다는 말은 첫 한 두 해 치를 때 하는 얘기고 이제는 축제의 변별력도 생겼으니 디테일이 생명이라고 본다. 포스터
디자인이나 모든 아트워크에도 전문성이 배어 나오고 있고 여기저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디테일이 세련되어졌음을 느낀다. 통계적으로는 지금까지 (2004년 제1회부터 2015년
제12회까지) 180만 관객, 4466명 아티스트, 11000여명 자원활동가가 있었다고 한다. 나는 무엇보다 자원활동가의 모집에 큰 신경을 쓴다. 자원활동가도 마찬가지로 경험이 많을 수록 디테일이 뛰어나다. 그래서 참여경력 다년차를
우선적으로 선발한다. 보통 3년차는 기본이다. 그래서 경쟁률이 7대1을
넘는다.
Q: 자원활동가들이 많이 몰리는 이유가 무언가?
A: 무엇보다 축제에 대한 애정이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가져 가는 4가지가 있다고 그들에게 이야기 한다. 1)프라이드, 2)친구, 3)경험, 그리고 4)티셔츠라고.. 이 네가지를 든다. 열심히 활동하면
4가지 다 가져가고 그렇지 않으면 일부만 가져갈 것이다. 물론 아무리 안 해도 티셔츠는
가져 간다. 많은 친구들이 프라이드와 경험 뿐 아니라 친구를 얻었고 이성친구도 얻는다. 배우자를 얻기도 했다. 덕분에 내가 주례를 세 차례나 섰다. 그 자녀들이 또 재즈페스티벌에
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Q: 앞으로 재즈페스티벌과 관련하여 개인적인 계획은? 재즈가수
나윤선의 남편으로서도 한마디 해 달라. 서로 간의 아티스트로서 교감도 있는지..
A: 당연하다. 나에게 특별한 재즈의 감각을 살려
준다. 내 아내는 지금도 세계적 재즈페스티벌에 다니다가 뭔가를 발견하면 나에게 사진이나 정보를 보내주고 느낌도 전해주며 코치도 해 준다.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 한 세가지는 결혼, 페스티벌, 그리고 전원생활이다. 자라섬 이전과 이후 삶이 변화하여 좋아졌지만
어쩌면 결혼 이전과 이후의 삶이 바뀌며 좋아졌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지나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알았다. 모든 일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나는 한 쪽 역할만 충실히 하는
것이었다. 축제 성공의 제일 덕목은 축제에 대한 사랑이라고 본다. 세계최대
규모의 몬트리올재즈페스티벌이 부럽지 않다. 규모가 성공의 척도는 아닐 것이다. 올해 13 번째
맞는 자라섬재즈페스티벌은 현재 규모가 적당하다고 본다.
나는 7년
후 제20회 자라섬재즈페스티벌까지 총감독직을 수행하려 한다.
그
뒤에는 가평의 어느 한 쪽에서 공간을 즐기며 다른 일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