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아트센터 ‘감각의 재발견’ 설치공연 (Installation Performance) 유진규의 빨간방
■ 공연일시 : 2010. 08. 27 ▶ 09.05 / 10:00am~07:00pm
■ 입장료 1,000원 (중학생이상 관람 가능합니다)
■ 주최, 주관 : 유진규네 몸짓
■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인사아트센터, (사)춘천마임축제
■ 공연장 : 인사아트센터(INSA ART CENTER) /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 문의 : 02.736.1020 / www.insaartcenter.com
▲ 유진규의 빨간방_2009_사진, 권영일
Artists In 유진규의 빨간방
● 구성/연출 : 유진규(유진규네 몸짓 대표, (사)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
● 퍼 포 머 : 김종학(극단 엑시트 대표)
● 영 상 : 신진식(건국대학교 교수), 박지현(다이노 대표)
● 음 악 : 정순도(상명대학교 교수)
● 조 명 : 용선중(프롯 대표)
● 설계/설치 : 유동규(디자이너)
● 사 진 : 이상학, 권영일
● 진 행 : 박소봉 외
● 가구협찬 : Design Museum aA
● 프로듀서 : 임인자(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 전시담당자 : 이재혁(인사아트센터)
2010년 ‘유진규의 빨간방’
@ 관객은 1분에 한 명씩 들어간다
@ 1 방은 나의 지나간 모습과 지금의 모습과 다가올 모습을 볼 수 있는 방이다
@ 2 방은 드러낸 나와 감춘 나와 그런 나를 보고 있는 나를 보는 방이다
@ 3 방은 눈 앞에 보이는 나 가운데 어느 것이 나 인가 생각하는 방이다
@ 4 방은 유진규와 와인, 커피 또는 물을 마시면서 쉬어가는 방이다
기획의도
몸이 닿는다. 빨간방에서 네가 나를 보고 내가 너를 보고 나를 내가 본다.
『유진규의 빨간방』은 유진규가 1979년 발표한 『아름다운 사람』 그리고 1998년 발표한 『빈손』 이후 자신의 작업세계를 완전히 뒤바꾸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다. 이 작품은 2008년 12월 춘천 미공간 봄에서 초연되었고 2009년 10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그리고 춘천 브라운5번가 광장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설치공연 되었다. 2010년 『유진규의 빨간방』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인사아트센터의 후원을 받으면서 보다 새로운 감각으로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관객과 만난다. ● 2010년 『유진규의 빨간방』이 열리는 인사아트센터 제 1전시실은 100평 공간으로 이전의 전시공간보다 약 5배나 확대되었다. 이 확장된 공간은 작가 유진규에게 또 다른 감각으로 구상을 시작하도록 했다. 관객의 몸에 닿는 여러 감각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 자신을 반추하도록 하는 이 작품의 특성이 확장된 공간에서 확장된 개념으로 어떻게 발휘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처음의 질문이었다. ● 전체 공간을 바라보며 드라마적인 흐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작품이 설치된 동선과 관객의 동선이 복합적으로 얽히는 흐름에 바로 빨간방의 주요 원리가 있다. 이 동선상에 배치된 다양한 감각적 요소를 가진 설치 속에 ‘ 네가 나를 보고 내가 너를 보고 나를 내가 보는 ’ 『유진규의 빨간방』의 화두가 존재한다. 처음에는 다양한 작가를 참여시킨 협업의 형태로 공간별로 개별적 작품을 설치 또는 퍼포먼스 하도록 하려는 생각이었지만, 결국 작가 유진규는 확장된 공간에 집착하여 그곳을 무엇으로 채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비워 나가면서 관객이 오롯이 자신과 만나는 방법을 택한다. 또한 감각을 환기할 수 있는 요소들의 개별적인 완결성과 전체 공간의 흐름을 동시에 주목하면서 지금의 전시 형태로 구상을 바꾼다. ● 2010년에도 유효한 한가지 화두는 ‘ 유진규는 마임을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다. 이는 ‘ 표현하는 몸 ’ 이 아닌 ‘ 감각으로의 몸 ’ 에 질문을 건네는 것으로 행위자와 관객 모두에게 던지는 – 무엇을 보여 주려고도, 무엇을 보려고도 하지 않겠다는 - 역설의 표현이다. 2010년 『유진규의 빨간방』은 위태하고 날카로운 그리고 어떤 생각이 지나치는 바로 그 순간에 삶의 진실이 있다는 ‘ 감각으로서의 몸 ’ 과 ‘ 감각으로서의 시간과 공간 ’ 에 대한 화두이다. 이를 위해 극성(劇性)과 조형성(造形性)을 뛰어넘어 ‘ 확장된 공간 ’ 과 ‘ 확장된 시간 ’ 으로 감각의 요소들을 배치하면서 바로 ‘ 날카로운 접점의 몸 ’ 을 찾아낸다. 그럼으로써 그 – 행위자와 관객의 - 몸은 ‘ 표현하는 몸 ’ 과 ‘ 감각으로의 몸 ’ 을 뛰어넘게 된다. ■ 임인자(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작가의 글
2008년 <빨간방>을 시작하면서 떠올린 그림은 반짝이는 테이프로 가득 찬 넓은 공간을 헤매는 - 마치 끝없는 바다를 유영하듯 - 존재들이었다.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20평의 작은 전시장에서 발표한 작품을 보고 100평이나 되는 전시장에서 다시 발표할 기회를 준 인사아트센터에 고마움을 드린다. ● 2010년 <빨간방>을 다시 구상하면서 강박증처럼 떠오른 것은 넓은 공간을 새로운 설치와 공연으로 가득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단순해지면서 빈 공간의 여백을 느끼게 해주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 거기서 더 나아가 아예 아무것도 없는 모노톤의 공간까지도 생각했었다. - ● 각각의 설치들은 복합적인 의미를 미니멀하게 함축시켜 긴장감을 높이면서 조형미와 함께 독립성을 갖도록 하였다. 이것은 공연자로 활동해온 내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 – 극적인 연결구조와 공연세트의 가식성 - 에 대하여 미술인들이 해준 각각의 설치들은 독립된 완결성과 조형미를 가져야 한다 는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사람은 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알 수 없는 일들이 다가오고 지나가지만
우리는 두려움에 떨면서 살고 있지는 않다.
마치 장님이 찻길을 무단횡단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다.
빨간방은 이러한 마음으로 만들었다.
내 작업의 핵심은 언제나 자각이다.
편안함이나 카타르시스를 주는 행위가 아니라
불안함이나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편안할 때는 자신을 잊지만
불안할 때는 자신을 보게 된다.
빨간방은 이렇다.
빨간 테이프가 가득한 방으로 혼자씩 들어간다.
보이지 않는 길을 찾아 헤매면 4 개의 설치를 만나게 된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계속 나를 보며 묻는다. 넌 누구냐?
가끔은 두려움 속의 자유를 가끔은 사막 속의 오아시스를 느낀다.
폐쇄된 공간 속에서 다면화된 자신을 보게 되므로
폐쇄공포증, 정신분열증, 자폐증, 심약증 등이 있는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빨간방을 다니다 보면 빨간색은 곧 익숙해져서 없는 색이 되어버린다.
우리를 감싸고 있는 공간에 아무 색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정말 아무 색도 없는 것일까.
볼 수 없는 것을 보고
알 수 없는 것을 알게
- 2010년 8월
유 진 규
*평론
마임, 그 이후 ● 유진규의 마임은 더 이상 마임이 아니다. 그는 마임을 그쳤다. 그 대신 온몸으로 마임 이상의 것을 말하려 한다. 설치미술과 퍼포먼스가 혼합된 확산된 개념의 마임. 그것을 마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의 신체로 인간의 근원적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하려는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관객이 스스로 느끼고 행위 하는 소통과 교감의 장을 펼쳤다. 그는 기존의 일방적 소통의 맥락에서 벗어나 상호작용적(interactive) 몸의 미학을 선보이고 한다. 3분 간격으로 전시장에 입장한 관객들은 눈 앞에 펼쳐진 은박지의 물결을 더듬어 헤쳐 나가면서 미로를 찾아 나선다. 5개로 구분된 전시장은 각기 서로 다른 환경으로 구성돼 있다. 컴컴한 유리판으로 둘러싸인 방에는 헤드폰이 준비돼 있는데, 관객이 그것을 머리에 쓰면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유리창 너머로는 손전등을 얼굴에 비춘 행위자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방의 천정에는 수많은 칼들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의 시튜에이션은 관객들에게 존재의 근원적 질문들에 동기를 부여한다. 이윽고 관객들은 맨 끝 방에서 작가를 만나게 된다. 마임이스트로 익숙하게 봐왔던 유진규가 바로 그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행위를 하지 않는다. 상체의 맨 살을 드러낸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모습이다. 관객이 어색해 하면 그가 말을 건다. 그것은 그가 이제까지 추구해 온 신체를 통한 표현의 맥락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일상으로 복귀한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 작품이 발표되는 전시장이 일상적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가. 그는 지난 30년에 걸친 긴 예술의 여정에서 과연 무엇을 느꼈던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는 몸의 표현을 그치고 그 몫을 관객에서 떠넘긴 것일까. 그는 과연 그 동안 자신을 옥 죄었던 허물을 완전히 벗은 것일까. 그래서 그 필생의 화두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일까. 다음 발표가 기대된다. ■ 윤진섭 (미술평론가)
미술의 외피를 빌려 연극의 영혼을 담다-전시장에서 공연된 유진규의 『빨간 방』에 부쳐 ● 『유진규의 빨간방』은 2차원의 평면에서 현실세계를 묘사하는 미술과 3차원의 공간에서 재현하는 공연이 서로 만났을 때 나타나는 묘한 결과물이었다. 종종 미술가들이 공연요소를 빌려 퍼포먼스를 하지만 무대미술가가 아닌 연기자에 의해 조형적 언어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이번 공연을 기억하는 이유다. (월간 한국연극, 2009년 2월호, 발췌) ■ 김중효 (연극평론가)
관람후기
설치작가가 된 유진규의 ‘구도마임’
조용한 밤. 잠을 못 이룬다.
은색테이프의 바식대는 소리하며 온통 빨간색하며 거울 속에 얼떨결에 나타난 낯섦이 환영으로 나타난다. 전시장을 설치미술로 꽉 채운 설치작가 유진규와, 유진규의 공연을 허탕 친 관객과의 사이에서 빈손의 ‘구도마임’인지 ‘마임구도’인지는 그리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 임근우 (화가, 설치작가, 강원대 교수)
방에서 길을 잃고 칼을 쥐다
이 방에 들어와 길을 잃었다. 그러나 예정대로 몇 개의 공간에 머물렀다. 이제 이 방에도 익숙해진 듯, 누군가 헤치며 나타나면 난 숨을 자리를 마련해 깊이 잠긴다. 이제 그들을 마주치지 않고서도 이 방을 유유히 유영한다. 이 방, 이 설치공연 공간의 유일한 공연자인 나는 단절된 나의 방에서 이제 빨갛게 번져나간다. ■ 이철성 (비주얼씨어터컴퍼니 꽃)
유진규의 빨간 방에서
유진규가 빨간방이라는 작품을 한다고 했을 때 난 또다시 그의 한국적인 마임을 기대했다. 하지만 난 마임리스트 유진규의 빨간방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몸짓을 한 건 유진규의 빨간방을 보러 간 관객(?)들 이였다. 한치 앞도 못 보는 그의 빨간방 안에서 관객들이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대는 모습을 유진규는 한걸음 물러나 관객이 되어 지켜보고 있었다. ■ 심철종 (씨어터제로 대표)
<유진규>
1972년 무언극 <첫야행> / 에저또 소극장
1979년 <아름다운 사람> / 76소극장
1988년 제1회 아시아 1인극제 <사람> / 바탕골 소극장
1989년 제1회 공간마임의 밤 <머리카락> / 소극장 공간사랑
1992년 한국마임20주년 기념공연 <아름다운 사람> / 소극장 공간사랑
1994년 연강명인전 <굶는 광대> / 연강홀
1994년 한일마임페스티벌 <굶는 광대> / 일본(동경, 나가노)
1994년 <허제비 굿> / 문예회관 대극장
1998년 서울연극제 공식초청 <빈손> / 동숭 아트센터
2000년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 독일 하노버 엑스포 공식초청 <빈손>
2001년 폴란드 국제마임축제 공식초청 <빈손>
2002년 한국마임2002 <불립문자> / 씨어터제로 극장
2003년 한국마임2003 <이불> / 블랙박스 씨어터
2003년 유럽순회공연 - 벨기에, 네덜란드
2004년 영국 런던국제마임축제 공식초청 <빈손>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 개막공연 <먼지 하나 물 한톨>
2005년 한국마임2005 <어둠은 어둠이다> / 블랙박스 씨어터
2008년 마임의집 정기공연 <있다! 없다! > / 마임의집
2009년 <유진규의 빨간방> / 미공간 봄 / 인사아트센터 / 춘천브라운5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