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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11시에 공주 명탄서원 충절사에서 해마다 음력 3월 초닷새마다 열리는 추모제향이 봉행되었다.
여말선초 문신으로 두문 72현 중 한 분인 송은 이명성과 충절의 명신 사봉 이명덕 형제의 학덕을 기리는 충절사 추모제향에는 공주이씨의 문성공파와 공숙공파를 비롯한 7개 종중에서 골고루 참석하였고 공주 시민 등 2백여 명이 참석하였다. 특히 올해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도지사와 시장 및 지방의회의원 등이 초청되지 않았는데도 성대하게 제향이 봉행되었다.

이날 제향에서는 초헌관 공주교육지원청 오명택 교육장, 아헌관 공주대학교 김정수 전 대학원장, 종헌관 공주이씨 공숙공파 이봉수 회장이 차례로 잔을 올렸다.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인 명탄(鳴灘)서원은 1490년(성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연기군 금남면 명탄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고, 사액 서원으로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역할을 해왔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1871년(고종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6년 후손들이 다시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명성 이명덕 형제는 공주이씨 가문으로 할아버지는 첨의정승 이사손이고, 아버지는 전공판서 충청공 이엽(李曄)이다.
형 송은(松隱) 이명성은 고려 말에 적성감무를 역임하고 감찰어사에 올랐으며, 목은 이색의 문인이면서 포은 정몽주와 교유하였다. 고려가 기울어지자 “나라가 망함에 있어 이를 구하지 못하면 충(忠)이 아니요, 어버이가 늙었는데 이를 부양하지 못함은 효(孝)가 아니다."며 탄식하였고 포은과 만월대 아래에서 눈물로 이별한 후 강원도 이천(伊川)의 산속으로 은거하였다. 떠날 때 동생에게 명문의 후손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못함을 설명하며 아직 벼슬을 하지 않은 동생의 경국제세(經國濟世) 재능을 높이 사며 새 나라에서 뜻을 펼치고 연로하신 어머님을 잘 모시라는 당부를 했다고 한다.
동생 사봉(沙峰) 이명덕은 1396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 문과에 급제한 후 테종대에 여러 벼슬을 거친 후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과 병조참판을 역임하였으며, 공조판서와 병조판서 등 요직을 거쳤다. 그는 백성을 아끼고 선정을 베풀어 태평성대의 기초를 닦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71세에 벼슬을 그만두었으나 복직하여 종1품인 판중추원사로 승진하였다. 그는 말년에 공주목 산내면 정생리(지금의 대전시 중구 정생동)로 낙향해 노모를 모시고 후학을 가르치며 살았다.
1444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대왕은 정생리 부근이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큼을 알고 시신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여 장지를 포수로 호위하게 하고 제문을 지어 내렸다고 한다.


공주이씨 문성공파 17대 후손인 명탄서원 이운일 원장은 "공주시의 역사인물로 추앙된 두 분의 학식과 덕망을 기리기 위해 이렇게 많이 들 찾아 오심에 감사하다"며, "지금 계속되고 있는 우리고장 국가유산활용사업에서는 배향된 인물과 지역의 전통 유교문화를 콘텐츠화하여 서원의 교육 기능을 살려가며 주체적 역사관 확립과 청소년 인성함양에 노력하고 있으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도 말했다.
우리고장 국가유산 활용사업 : https://blog.naver.com/mt14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