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관광상품이 아니다. 축제는 누가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임수택 과천한마당축제 예술감독의 어조는 항상 단호하고 깔끔하다. 많은 축제애호가들이 꼽은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축제인 과천한마당축제에서 10년째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는 그는 축제를 보는 시각이 남다르다.
▲ 극단 몸꼴의 "리어카 뒤집어지다"
◀ 스튜디오 이클립스의 "저 아래 물은 얼마나 깊을까?"
(@ 제15회 과천한마당축제)
"축제가 요즘 문화계의 화두이고 축제가 없는 지역이 없다. 하지만 지자체의 관광수익을 목적으로 축제를 시작한다면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하며 요즘의 축제 난립을 꼬집었다. "공동체가 올바른 목적을 설정하고 충실하게 축제를 치를 경우 그 뒤에 관광객이 따라올 수는 있지만, 관광객이 주인이 되면 그 축제는 상업적으로 변질된다." 며 예술행위로 치르는 제사로서 예술에 대한 공동체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그의 축제관을 피력했다. 예술을 전혀 접하지 않은 사람들도 축제가 열리는 시기에는 예술에 주목하게 된다고 한다. 임 감독은 과천한마당축제를 통해 예술작품들이 집중해서 공연되게 하고 부대행사도 열면서 과천시민들로 하여금 단순히 먹고 마시는 것에서 벗어나 품위있는 삶과 예술에 관심갖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그는 겸손하게 자신의 위상을 내려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감독이 축제를 만든다고 착각한다"고 말하며, "축제는 예술감독이 만드는 게 아니라 공연자가 하는 것이다. 또한 축제의 주인공은 예술감독이 아니라 예술가들인 것이다. 예술가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고 예술감독은 조합의 역할을 할 뿐이다. 역할은 간접적이며 제한적이다."고 말한다.
즉, 좋은 예술작품이 있어야 좋은 축제가 된다는 그의 주장이다. 그리고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축제가 지원하고 유도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예술가들이 서로 만나 소통하면서 예술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아이디어를 주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를 인터뷰하는 날에도 한국거리예술센터 회원들과 함께 축구 풋살경기를 즐기고 회식을 하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수많은 공연자와 기획자 등 젊은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임 감독과 어울리는 모습에서 그의 자상함이 엿보였다.
예술감독의 중요성은 이러한 사석에서도 발휘되는 것 같았다. 사실 축제의 프로그램에 결정적 역할을 예술감독이 한다. 그의 예술관에 따라 작품의 가치가 매겨진다고 볼 때 예술가들과의 교류는 예술의 흐름을 생성할 뿐 아니라 주도하고 있었다. 임수택 감독은 "예술가들이 만나는 공간이 축제이고 축제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예술 발전에 기여한다"라고 말하며, "축제학이라는 학문이 있다면, 관광경영학 보다는 인류학이나 민속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 임수택 과천한마당축제 예술감독 (사진: 더페스티벌)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TheFestival: 과천한마당축제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데 왜 정부에서 선정하는 문화관광축제는 들지 않는가?
임수택 감독: 축제는 관광상품이 아니라 예술이기 때문이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문화수준이 높아지는 데는 관광수익을 통한 경제효과보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TheFestival: 과천한마당축제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인연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임수택 감독: 과천은 거리예술의 장르로 축제가 표현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다. 인구 6~7만으로 축제하기에 딱 맞는 크기의 도시이며 젊은 이들이 많이 산다. 젊음의 도시답게 축제가 뿌리내리기에 적합한 토양이다. 야외문화활동에 좋은 자연환경이 과천시의 자랑이다.
TheFestival: 예술적 가치 외에 과천한마당축제의 핵심성공요인(Critical Success Factors)이 있다면?
임수택 감독: 공동체 구성원 참여도가 아주 좋다. 우리 축제는 시민들의 인지도 93%, 참여도가 87%에 달한다. 이는 생활수준이나 교육수준 그리고 연령대가 비슷한 동질의 구성원이어서 그렇다. 젊은 부부와 어린이 중심으로 축제에 참여한다. 또, 도시 전체가 공원화되어 있어 어디서든 거리예술을 표현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도 중앙로의 차량통행을 완전폐쇄하고 예술활동을 할 수 있게한 관계부처의 지원이 크게 한 몫하고 있다.
TheFestival: 오늘 날 과천한마당축제의 성공에 롤모델이 될 만한 해외의 사례가 있었는가?
임수택 감독: 2003년에 축제를 맡게되었고 당시 마당극 장르의 발전가능성에 한계를 보았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마당극의 일방적인 정치성향이 과천이라는 지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벨기에 뢰벤에서 야외에서 거리극을 처음 봤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저 실내에서 하는 공연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리에서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해 "샬롱의 거리에서"라는 거리극축제의 예술감독이 시장에 의해 전격 경질된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장은 예술감독에게 카메라가 발명된 곳이라는 샬롱시의 역사를 강조하고 미래는 이미지의 시대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축제를 이미지 중심으로 바꾸라는 미션을 준다. 이 경험에서 나는 축제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해야한다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그 후 매년 7월이면 이 축제를 방문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보다 거리예술의 최근 경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오리악(Orillac)에서 열리는 축제도 중요하다. 세계 최초로 우산이 발명될 정도로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거리극 축제가 열린다. 이 축제는 샬롱거리극축제에 비해 정치성이 강하지만 이 축제의 가장 큰 특징은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는 개방성에 있다.물론 공식참가작을 제외한 자유참가작은 공연자가 비용을 부담한다. 그래서 공연하겠다고 신고하고서 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 공연하겠다고 신고를 하지 않고 공연하는 사람도 있다. 이 축제에는 관객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약 500여명에 달하는 예술 감독들이 찾아온다. 이미 공연장이 이들로 꽉 채울 정도이다. 또 공연하는 사람은 당연히 오겠지만 예술감독들을 만나기위해 공연하지 않는 사람도 오기 때문에 마치 거리극의 순례지같은 느낌이 든다.
TheFestival: 축제의 참여작품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임수택 감독: 해외작은 내가 직접 섭외하여 고른다. 국내작은 운영위원회에서 공모 및 심사를 거쳐 선정되게 되는데, 심사기준은 세 가지로 언급될 수 있다. 첫째, 기술의 완성도이며 둘째, 사회적 이슈의 반영이다. 단순한 엔터메인먼트 지향의 작품을 배제하고 있다. 셋째는 전통의 현대화라고 본다. 문화의 뿌리가 있어야 하며 전달방법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져야 한다.
TheFestival: 다른 축제와 거리극을 공동공모하던데..
임수택 감독: 맞다. 춘천국제마임축제와 공동으로 공모하고 있으며, 춘천의 상황을 고려하여 거리극보다 야외극이라는 용어를 썼다. 좋은 작품을 집중지원하자는 취지하에 공모전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은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TheFestival: 현재 축제계에서는 과천한마당축제를 세계적인 거리극축제로 보고 있고 이제 샬롱이나 오리악과 견줄 정도인데, 세계적인 극단과의 교류를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 새해들어 포부가 있다면?
임수택 감독: 외국작품의 단순한 축제참여가 아니라 문화교류, 문화외교로 발전해 가고 있다. 축제는 매번 신비로움과 신섬함을 가져다 주어야 하기에 끊임없는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가간 거리극 공동제작을 위해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등과 교류해 왔다. 올해는 설치미술 중심의 4대륙 공동주최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아프리카, 북미, 유럽 및 아시아의 4대륙이 함께 "1 Project of 4 Continemts"라는 이름으로 공동주제를 선정하게 된다. 2월에 컨퍼런스가 열리며 북미에서는 캐나다 퀘벡, 유럽은 프랑스 빌레르반이 나오며 아시아는 한국의 과천이 대표하게 된다.
TheFestival: 끝으로 우리나라 축제 발전을 위하여, 축제관련 일 종사자 및 지망생들을 위해 코멘트 해 달라.
임수택 감독: 우선 축제에 몸담을 사람들이 내가 왜 축제를 하는지 근원부터 들여다 봐야한다고 본다.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는지 살펴봐야하고 나름대로의 공부와 비전과 신용을 쌓아야 한다. 연극을 이해하려면 고대 그리이스 작품부터 심취해 봐야 한다. 예술적 안목을 가진 사람과 교류하며 예술적 소양을 발전해 갔으면 좋겠다. 요즘 축제행정이나 마케팅에 관심을 더 많이 갖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홍보와 마케팅이 아니다. 이 것은 내 경험에서 나온 얘기이다. 확신하건대 예술성 에 기반을 가진 자연발생적 축제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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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하고 안에서 우쭐댄다면 축제는 발전할 수 없음을 임수택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안에서도 예술가들끼리 쉼 없이 교류하듯이 해외 예술단체들과 실력을 주고 받는 그의 일상에서 진정한 예술축제의 방향을 읽을 수 있었다. 과천한마당축제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세계 축제의 4강에 진출할 것 같은 예감을 강하게 받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새해를 맞으며 축제의 나라 대한민국을 꿈꿔본다. 그리고 축제다운 축제를 만들어 가는 임수택 예술감독이 자신의 사명(Mission)을 정의함이 와 닿는다.
"축제는 예술가들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예술감독을 통해 예술계에 방향을 제시한다. 축제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예술발전에 기여한다."
글/대담: 서정선 더페스티벌 대표 (suh@thefestiva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