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래 첫 동네 지리산골짜기에 ‘의신’이라는 작은 산촌이 있습니다.
동네 바로 뒤가 벽소령이고 지리산 주능선이 동네를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산촌중의 산촌입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 동네의 겨울은 낮이 매우 짧습니다.
아침 여덟시 반이 되어야 해가 산을 겨우 턱걸이 하고
세시 반쯤 되면 산 그림자가 동네를 다 덮어버리고 벌써 잠잘 채비를 해야 하는 곳이지요.
이 동네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오후 네 시, 태양은 지남철이 잡아당기는지 순식간에 넘어가버리더군요.
하늘 중간쯤에 있어 보이던 태양이 순간이동을 하는 듯하였습니다.
좀처럼 해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은 아침,
여덟시가 되어도 꿈쩍도 하지 않던 태양이
우리를 놀래 줄려고 듯 “짠”하고 갑자기 모습을 나타내더군요.
그러더니 순식간에 어둠의 동네에서 환한 대낮이 되어버렸습니다.
낮이 짧은 만큼 빛은 말 그대로 무결점이었습니다.
순결을 지켜왔던 처녀처럼 나뭇가지에 착 달라붙어서 밀어를 나누더군요.
본격적인 겨울날씨가 찾아 올 것이라는 예보입니다.
건강하시길 빌면서....
조문환드림
나뭇가지가 햇빛에게 전해주는 말
너는 첫 몸짓으로 내게 찾아왔다
내 몸은 이미 벽소령 칼바람에도 달아 있었지
빗점골의 바람이 여우처럼 울어대었던 지난 밤에도
나는 손가락으로 두 귀를 막고 참아내었다
너만이 나의 의미이며
나만이 너의 의미다
누구에게도 감춰두었던 너의 몸짓으로
날 껴안아 주렴
날 만져봐 주렴
내 가는 손가락을
내 뛰는 심장을
너만이 나의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