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미장원에서 생긴 일
이발소 보다 미장원이 더 편한 건 저 만의 일일까요?
25년 가까이 미장원을 다녔습니다.
평사리로 이사 온 후에는 동네 미장원을 다니고 있는데,
부부미용사가 운영하는 미장원입니다.
이번에 가니 동네 어머니 두 분 파마를 하시고 계셨습니다.
두 분 연세는 여든에 가까운 분들이었는데
한 어머니는 머리를 하시는 내내 졸고 계셨습니다.
“어머이, 머리 하면서 자는 잠이 잠 맛있지요?”
“맛있다 말다, 진짜로 맛있지”
옆에 계시는 다른 어머이가 대화에 끼어 드시면서
“머리 할 때 잠이 오면 살을 꼬집어 각고 자면 안돼”
“자면 미용사가 얼매나 힘들다고”
“내는 우리 동네에서 파마를 가장 일찍했다 아이가”
“신랑이 내 얼굴이 못생겼다 헌깨로 시집 오자마자 파마를 했지. 55년 쯤 됐재 벌써”
“처음에는 부끄러워 수건을 쓰고 다녔다 아이가”
미장원 동기가 된 어머니의 자랑 반, 넋두리 반의 이야기들은 계속되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도 당시로서는 파마를 동네에서 선두로 하셨습니다.
70년대 중반 쯤 되었으니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지요.
아버지 몰래 장날에 동네에 같이 사셨던 올케와 같이 하고 오셨는데
그날 저의 엄마는 집에서 쫓겨나셨습니다. 아버지 때문에요. ㅎㅎ
어머니는 달포 정도 수건을 하고 다니셨지요.
미장원에서 추억을 하나 주워 담았습니다.
끝 볕
끝 볕 한 뼘에도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