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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환의 지리산별곡 제3호 존티재 대나무숲에서 뛰놀다
조문환 기자    2017-07-25 09:10 죄회수  4126 추천수 6 덧글수 4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존티재 대나무 숲에서 뛰놀다!

(하동군 서당마을~명사마을)

 

서당마을은 우계분교로 대표되는 곳이다.

 

지금은 폐교되어 간신히 건물의 형태만 남은 이곳 우계분교는

옛날에는 운동장이 터져나갈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었고

4학년이 되면 본교로 편입되어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의 나래를 펼치게 했던

드림필드였다.

 

비 오는 날에는 지각과 결석을 밥 먹기로 했던 우계분교 아이들,

머리에는 부스럼이 가득했었고 촌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다들 성공하고 정 많은 아이들로 변해 있다.

그 때 그 아이들은 지금 오십 줄을 넘어섰을 것이다.

 

그래서 서당이 있었나 보다.

마을에 들어서면 지금도 아이들의 우렁찬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시 우계분교가 아이들이 뛰노는 꿈동산이 될 수 있을까?

오늘은 두 개의 재를 넘어야 한다.

버디재와 존티재다.

 

한 많았을 재,

지금은 단지 산을 좋아하여 걷는 재미로 찾는 이가 더러 있지만

옛날에 재는 삶의 질곡이 흘러 내렸던 인생의 큰 고개였으리라. 

갓 스물을 넘긴 누님들이 철모르고 넘었던 가마고갯길,

가마멀미의 그 고갯길이 쓴 시집살이의 시작이었다는 것을 알았을까?

 

빡빡머리 산골 친구들이 책 보따리 메고 학교로 달려가던 고갯길,

비록 고행의 길 이었지만 꿈만은 꺾이지 않았었다.

 

아버지가 장날에 새벽같이 소 몰고 우시장으로 향했던 그 고갯길,

소도 울고 아버지도 울고 이별의 서러움을 삼켰던 길이었다.

 

외갓집 머슴살이 왔던 문 씨 아재가 싸재비 한 짐하고 내려가던 길,

담배 한 모금으로 가족과의 이별의 한숨도 삼켰을 것이다.

그 한 많은 고개를 나는 우습게 넘어버린다.

버디재 고개 아래에는 아직도 샘이 있다.

이 샘물 한 바가지로 시집살이의 쓴맛도, 소와의 이별도,

머슴살이의 고달픔도 잊었으리라!

 

버디재는 서당과 이정마을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다.

버디재를 올라가다 뒤를 돌아 서당마을을 내려다보니

설맞이 준비에 굴뚝에는 연기가 모락모락 오른다.

 

산골일수록 옛 정취가 더 남아 있지만 서당골도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다.

동네에 내려앉은 연기처럼

산골마을은 도시로 떠난 자녀들을 향한 그리움만 내려앉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오늘과 내일 한 사흘은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잠시나마 정적에서 깨어 날 것이다.

 

 

버디재를 미끄러지듯 내려와서 이정마을과 동촌마을을 통과했다.

삼화실로 통칭되는 이곳은 귀농인이 넘쳐나고 고랭지 식물의 보고가 되어

부자동네로 소문나 있다.

 

삼화실과 명사마을의 경계인 존티재는

어쩌면 그렇게 버디재를 닮았는지 모른다.

 

버디재 아래 이명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터널을 이룬 대나무 숲길과

존티재 아래 명사마을로 내려가는 길에 나 있는 대나무 숲길까지도 닮았다.

허기야 같은 사람들이 보듬고 넘었을 것이기에,

그 나뭇가지 하나, 돌멩이 하나까지 닮지 않았을까?

 

깡마른 참나무가 우거진 산속에서 대나무 숲은 하나의 섬같이 보인다.

찰랑찰랑 거리는 참머리 소녀의 정갈한 머릿결같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오후 햇빛에 반사된 대나무 이파리가 바다에 빛나는 잔물결 같이 보인다.

내 어릴 적 대나무 숲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막대기로 칼을 만들고 친구들과 무리지어 다니면서 온갖 놀이를 했던 곳이다.

 

그러던 것이 초등학교 4학년,

동네 아이들과 놀러갔었던 대나무 숲에서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삶과 죽음을 알아버렸다.

 

밝은 바깥에서 어둠의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순간,

숨이 막히고 심장은 멈춰 섰으며 온 몸은 번개라도 맞은 듯

굳어져 버렸던 기억이 있다.

 

나는 누구이며 도대체 왜 여기에 있는가?

인생을 알고 깨달아 버린 숲속의 사건이었다.

누구나 한번 씩은 겪게 되는 과정이겠지만 실로 충격이었다.

 

그 이후로 대나무 숲은 놀이터에서 의미의 장소로 변해버렸다.

지금도 대나무 숲은 철없던 시절의 놀이터이자

나를 알아버린 철학의 숲으로 내 뇌리에 겹쳐져 있다.

정말이지 존티재의 대나무 숲은 명품 숲 그대로였다.

대나무의 결이 곧았고 그 살결도 빛났다.

더군다나 대나무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은 그만큼만 오려가지고

집으로 가져가고 싶은 욕심까지 들 정도였다.

 

그 숲속에서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막대기 휘돌리면서

아이들과 뛰어다니고 싶어졌다.

저 멀리 상 존티 모퉁이에서 옆구리에 칼을 차고 달려오는 친구들이 보이는 듯하다.

 

녀석들 오늘도 해 지는 줄 모르고 들판을 휘갈기겠지!

친구들아, 너희들은 용감하였다.

그리고 우리들의 추억은 영원할 것이다.

 

존티재 대나무 숲 속에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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왁자지껄   2017-08-09 17:04 수정삭제답글  신고
해지는줄 모르고 들판을 휘젓던 어린시절 새록새록 떠오르겠습니다 시골출신이라면~
missK   2017-07-27 19:35 수정삭제답글  신고
추억어린 길이군요~ 옛날 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그 고갯길, 대나무숲, 들판을.. 그대로 영구보존할 수없을까~
적벽청류   2017-07-25 17:58 수정삭제답글  신고
어떻게 재(고개) 이름을 영어 감각으로 지었을까요? ㅎㅎ 신기하네~  Birdie재, John-T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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