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서산대사와 손잡다
(하동군 신흥~의신마을 서산대사길)
광복절을 전후한 날씨는 일제에 항거했던 우리 선조들의 저항만큼이나 뜨거웠다.
하지만 지리산 아래 첫 동네 대성골 신흥마을에 자리 잡은
왕성분교 뒷산 자락의 가을하늘은
하늘이라기보다는 가을을 알리는 깃발처럼 보였다.
가을 운동회를 알리는 깃발 같은.
여름과의 작별을 위한 산행이기도 하다.
대성골 계곡에서 힘차게 내려 뻗은 계곡물은 그 물소리에서도 가을 냄새가 났다.
이제 곧 그 물줄기를 따라 벽소령에서 출발한 단풍잎 하나가 떠 내려와
화개장터의 장돌뱅이들에게 가을이 왔음을 알려 줄 것이다.
기다림이 있는 삶은 아름다운 삶이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시간을 기다리고,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기다림이 없는 삶은 죽은 삶이 아니겠는가?
가을을 기다리고 겨울을 기다리고 봄을 기다림은 자연과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정말 복 받은 나라임이 틀림이 없다.
사시사철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때로는 그걸 잊어버리고 사는 내가 무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리산 자락의 삶이 순간순간 행복으로 나를 이끌어 준다.
뒤를 받쳐 주는 형제봉,
늘 부드러운 곡선의 미를 자랑하고 있는 구재봉,
아침과 저녁에 쉬지 않고 놀아주고 노래 불러 주는 새와 풀벌레들,
매일 아침 해뜨기 전 늘 다른 그림을 선보여주는 성두마을 뒷산의 하늘,
…….
저녁마다 나를 위해 수놓는 별들은 나를 별들의 전설 속으로 안내한다.
지리산 자락의 삶이 가져온 일상에 대한 감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젠가 자유인이 되었을 때 나는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홀연히 여행을 떠나고 싶다.
거기서 나와 같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사람을 좋아하는 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다 또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이다.
이것 또한 나의 기다림이다. 마치 여름 다음에 가을을 기다리듯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보다 먼저 수백 년 전
아니 수 천 년 전에 순례길 나섰던 나의 조상들을 따라 나서기로 했다.
화개면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까지 약 시오리 정도 되는 숲길이다.
이 길을 옛길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더러는 서산대사길이라고도 부른다.
보통명사인 옛길 보다는 이야기가 스며 있는 서산대사길이 더 운치가 있어 보인다.
그럼으로 나는 옛길이라 부르지 않고 서산대사길이라 부르고 싶다.
내가 듣기로는 이 길은 오래 전 아스팔트길이 생기기 전에는
대성골 의신마을 사람들이 화개장터로 오가는 길이었다.
삼정에서, 의신에서, 그 위 벽소령 넘어 산청과 함양에서 괴나리봇짐 지고 이 길을 다녔다.
고행과 같은 이 길을 우리의 선조들은 운명처럼 다녔을 것이다.
삼정과 벽소령 사이에는 빗점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빨치산 무리들의 아지트였다.
이현상이가 사살된 곳도 이곳 빗점이다.
서산대사길은 결국 의신을 지나 삼정과 빗점, 벽소령으로 연결되는 곳이다.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넘나 들었던 추적자들,
이들에 쫓기는 자들이 들짐승처럼 산야를 숨죽이며 다녔을 길이다.
더 일찍이는 이 길이 시작되는 신흥 슈퍼 맞은편 계곡에 숨은 듯 서 있는 세이남(洗耳巖)에서
최치원선생이 지리산을 향해 첫 발걸음을 디뎠던 곳도 결국은 바로 이 길이었다.
그가 귀를 씻었던 세이암이 바로 내가 서 있는 발아래 신흥계곡에 누워있다.
좀 더 먼 훗날 이 국토가 왜구의 노략질에 찢기고 상처 입었을 때
홀연히 나섰던 서산대사의 구국을 위한 떨침도
결국 이 길을 나서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서산대사는 대성골 원통암에서 득도하여 순례의 길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들의 걸음을 따라 나도 순례자의 일원으로 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화개장터를 운명처럼 생각했던 민초들,
쫒고 쫒기는 운명의 빨치산들,
천재적 재능으로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 까지 온 누리에 그 명성이 높은 최치원선생과
승려의 몸으로 한 몸 바친 서산대사,
나를 비롯한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결국 자연의 일부로서
순례의 길을 걸었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이었을 것이다.
단천마을 입구 맞은편에는 홀로 외딴 가옥이 있다.
고추잠자리 부부가 빨랫줄에 앉아 낮잠을 청하고
빈집에는 빨래가 태양에 몸을 말리고 있다.
서산대사가 요술을 부려 생겨났다는 의자바위는 그 세월의 때가 두껍게 내려 앉아 있다.
이 길을 지나갔던 수많은 순례자들이 앉아서 쉼을 얻었을 그 자리다.
누군가 처음 쌓기를 시작했을 작은 돌탑에 앉은 여치는
인기척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그 만의 생각에 집중하고 있다.
팔월의 태양에 두꺼워 질대로 두꺼워 진 이파리를 투과하지 못한 햇빛이
이파리에 부딪쳐 길바닥으로 나뒹굴어져 있다.
그만큼 숲이 짙은 오솔길은 어둡기 까지 하다.
새잎이 돋아났을 초봄에는 이 숲이 어떠했을까?
만추의 계절이 지나고 이파리가 서리로 온몸이 차가워졌을 때에는
그 색상은 또 어떠할까?
철마다 완전히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을 서산대사길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었다.
그만큼 서산대사길은 철따라 찾아오고 싶은 길이다.
11월 초, 스산한 바람이 이 숲길을 걸을 때
나 다시 이 길을 찾아와 그 바람과 함께 순례의 길 나서리라.
참새 혀 보다 더 작은 싹이 나뭇가지에서 움트고 나올 때
나 또 다시 세상으로 환생한 그들을 맞이하러 이 길을 찾아 순례의 길 나서리라.
긴 터널을 걷는 것처럼 서산대사길은 숲속의 미로와도 같았다.
저 멀리 대성골 의신마을이 높은 산자락에 매달려 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에서서 가을이 대성골에 내려앉으면 다시 오리라 다짐을 하노라니
건너편 마을 어귀에 의신마을 친구인 영택씨가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서 있다.
“어이 친구, 우리 같이 순례길 떠나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