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페스티벌 즐겨찾기 추가
  • 2024.11.24 (일)
 축제뉴스 축제뉴스전체
조문환의 지리산별곡 제20호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나니
조문환 기자    2017-11-15 23:24 죄회수  6774 추천수 7 덧글수 5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나니

(구례군 오미 ~ 송정)

터질 듯 하는 가슴이 있다면 이는 바다로 가져가야 한다.

철썩이는 바다, 바위를 깨고도 남을 그 앞뒤 없고 오늘도 없고 내일도 없어 보이는 파도에 던져야 한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들썩이는 어깨 울음으로, 가슴으로 울어야 한다면

이는 강으로 가져가야 한다.

세상의 온갖 때를 씻어 버리는 정화수 같은 강물에 내 던지고 씻겨야 한다.

문드러지고 오랜 세월 동안 벙어리로 살아왔던 가슴이 있다면

이는 산으로 가져가야 한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리듯 나를 그 얼척없는 바람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바다는 많아야 한 철에 한 번,

그렇지 않으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가야 환영받을 수 있다.

매일 바라보는 바다는 공허한 마음만 부추길 따름이다.

강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가 제격이다.

지난번에 받았던 감동과 메시지가 내 속에서 소화되고 음미되고 숙성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산은 시와 때는 물론 대상을 가리지 않는 가슴을 가졌다.

나무와 바위와 구름과 태양으로부터 늘 힘을 받아서인지 모른다.

그에게 다가오는 그 어떤 형태의 모습도 그는 수용성을 가졌다.

지리산 자락을 돌아다닌 지 꼭 일 년, 그를 알고 나를 알아 갈 즈음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해 설날을 보내고 평사리들판을 가로질러 대축마을 뒷산을 감싸 안고 돌았을 때

미동마을 앞을 휘감아 돌아가는 섬진강이 태양에 그을려 검게 타고 있었다.

앞으로 일 년이 지나야 다시 섬진강이 있는 곳으로 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 후 꼭 일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는 산에 기대어 살았다 할 만큼 산과 가까워졌다.

아침마다 내가 시간을 보낸 곳도 산자락이었다.

내 첫 호흡이 뿌려지고 내 첫 음성이 울려 나는 곳도 산자락이었다.

나의 첫 발걸음, 첫 기도가 시작되는 곳도 산길의 작은 오솔길이었다.

섬진강에서 보낸 일 년은 나와 섬진강이 하나 되어 손잡고 걸은 동행의 시간이었고

섬진강이 나의 친구가 되고 내가 섬진강의 친구가 되었던 시간이었다.

지리산과 보낸 일 년은 나와 호흡을 같이한 시간이었다.

내게 기도를 가르쳐 주었고 무딘 내 감성을 다듬어 주었고

어디로 발을 떼어야 할지 모르는 내게 선명한 음성으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일 년 전 대축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를 감전시키고 냉가슴이 뜨거운 가슴 되게 한 것은 비발디였다.

한 번씩 라디오에서 듣는 비발디의 <사계>는 그 대중성으로 인하여 늘 익숙해 져 있는 멜로디다.

하지만 그날 평사리 들판에서 들은 <겨울>은 겨울을 겨울답게 만들었고

봄을 잉태시키고 계절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창조적 에너지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사계 중에서도 <겨울>을 무척 좋아했고

<겨울>의 멜로디에서는 나는 늘 용광로와도 같은 열기를 느꼈었다.

간밤에 내린 비로 온 세상의 기운이 땅에 바짝 엎드려 있다.

겨울에 내리는 비는 마른 대지와 그 위에 흩날리는 나뭇잎은 물론

건조해진 일상에 충분한 영양분을 제공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떨어진 낙엽 위에 시 한 구절씩이 씌어져 있어 보인다.

숲은 한권의 시집이 되어 있었다.

구례군 토지면으로 향하는 차 안에는 쇼팽이 동행 해 주었다.

그는 간밤에 낙엽 위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건반으로 옮겨 놓았는가 보다.

쇼팽을 들으면 꼭 가는 비를 맞고 강가를 걷는 느낌이다.

잔잔하면서도 촉촉이 땅으로 스며드는 빗물처럼 내 속을 파고든다.

그와 나는 일체감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의 야상곡은 가랑비로 내리다가 때로는 폭우로 창을 때리기를 반복한다.

올 한 해는 쇼팽과 아무래도 친구가 될 것 같다.

유이주로 대표되는 오미마을을 지나 파도마을이 내 발 아래 비에 젖어 있다.

옅은 안개가 온 산과 마을을 덮고 있어서 가시거리가 일 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이로 인하여 착시 현상이 생기고 나무와 산과 마을들이 몽환적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때로는 구름이나 안개가 낀 날씨에는 멀리 있던 산이 가까이 다가와 서 있을 때가 있다.

하늘이 파랗고 공기가 맑아 더 선명하게 보일 것 같은 날씨에는

오히려 산은 저 멀리 한 걸음 뒤로 물러 서 있을 때도 있다.

차라리 지금까지 내가 본 경험으로는 안개가 살푼 걸쳐 있는 산등성이는

그 능선이 더 선명하고 손으로 잡을 듯 하다는 것을 매 번 느낀다.

세상이 투명해 졌다고 하지만 더 혼탁해져 가는 현실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온갖 통신이 발달하여 세상일들이 명경처럼 볼 수 있지만

세상은 더 어두워져 가고 일탈이 심해져 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

차라리 파발이나 편지로 세상 소식이 전달되고 전파될 때가 더 맑고

더 가까이에서 보는 것과 같았던 이치와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내린 비로 산 속 오솔길에 떨어져 있는 낙엽이 붉게 변하였다.

한껏 물을 들여 마셨는가 보다.

두터운 등산화 밑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길에 탄력이 생겨 산길을 오르는 느낌도 경쾌하다.

오늘 걷는 길은 노고단의 동생뻘 정도 되는 왕시루봉 아래 산자락이다.

왕시루봉 발아래는 섬진강이 흐르고 그 건너편에는 전라도 백운산이다.

두 산은 거의 겹쳐져 있고 섬진강은 이 두 산 사이를 지나 남해로 흐른다.

산길을 따라 오르막이 계속되고 숨은 헐떡거린다.

옅은 안개사이로 연한 곡선이 발아래에 밟히는 느낌이 들자

잔잔한 물 흐르는 소리가 울려 솟구쳐 오른다.

왕시루봉과 백운산이 하나의 공명장치가 되고 안개가 그 소리를 정화시켜

작은 흐름도 선명하게 잡아내는 역할을 한 듯하다.

구름은 거의 정체되어 있지만 약간씩 미동하는 그 형국에 따라

산 능선이 드러났다 덮이고 곡선의 섬진강도 그 모습이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강물 소리는 그를수록 더 선명하고 명쾌하여 공명된다.

마치 차 속에서 들었던 그 쇼팽의 소나타 음률처럼 사랑스럽게 산 계곡을 타고 흐르고

내가 걷는 작은 오솔길에 건반을 만들어 내 발걸음을 뗄 때마다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안개만 있었다면 자칫 보지 못할 섬진강을

자연이 만들어 낸 그 완벽한 공명 장치로 인하여

깊은 산 속 왕시루봉 아래에서 땀을 식히며 듣는 행복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이다.

섬진강은 소리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주얼이 강조되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 만큼 믿음도 식어져 가는 세상이다.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다던 예수님의 제자 도마도 결국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지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 복되다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 비하면 극히 제한된 부분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갖는 의미는 보이는 것들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보이지 않아 더 신비롭고 더 우렁찬 사운드를 발하는 섬진강은

분명 왕시루봉과 백운산에 소리가 울려 아름다운 선율로 내게 다가 왔다.

안개로 이하여 더 가까이 다가왔던 백운산, 그 유연한 곡선미,

안개로 인하여 더 선명하게 들려왔던 섬진강 사운드,

이들은 보이지 않음으로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인 증인이다.

보이는 것에 비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이 덜 대접받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귀를 때리는 소리가 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지 않았으니…….”

빗속의 송정마을이 섬진강가에 누워 쇼팽의 야상곡을 안개 속에서 듣고 있다.

태그  
 이전기사      다음기사   메일       인쇄       스크랩
  목록으로 수정    삭제
덧글쓰기 댓글공유 URL : http://bit.ly/34sPRT 
오브리   2017-11-25 01:57 수정삭제답글  신고
조문환 선생님..
 잘 읽고 있습니다~~항상 마음 따뜻한 글..(너에게도..나에게도)
유리공주   2017-11-24 14:26 수정삭제답글  신고
석ㄴ
강소연   2017-11-22 12:55 수정삭제답글  신고
보이는것들보다 보이지않는것들이 만들어내는 심오한 그무엇이 섬진강에 있다니 찾아가고 싶고 놀러 가고싶어요
꽃든남자   2017-11-15 23:52 수정삭제답글  신고
쇼팽의 야상곡을 안개낀 섬진강가에서 듣는다~~?? 듣는이가 빗속의 송정마을이고~?? 섬진강 사운드까지 들리는듯합니다.
축제포토 더보기
인터뷰  
삿포로눈축제 실행위원장에게 듣는다
<더페스티벌>은우리나라의축...
인기뉴스 더보기
공연관람과 서울굿즈구입 세종문화...
논산탑정호와 돈암서원 코스모스 ...
도쿄관광한국사무소 Rppongi Hills...
축제리뷰 더보기
계룡저수지 산책로 계룡지둘레길...
밤 깊은 마포종점 축제로 새롭게...
만두도시 만두성지 원주만두가 ...
강경젓갈축제 상월고구마 찰떡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