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누구를 기다리시나? 피서철을 맞아 옆집에는 자식들이 찾아오는데....)
<업친데 덥친격>이라는 말을 요즘 하동을 두고 한 말인 것 같습니다.
7월 초, 집중호우로 이제 막 허리 좀 펼까 했더니
태풍 무이파가 기습적으로 몰려와 더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지난 편지에 “특별재난지역”이 되었다고 자랑? 했었는데....
채 이틀도 지나기 전에 또 물난리를 만났습니다.
자연에 대한 도전과 응전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저의 교만이 작용했었나 봅니다.
자연 앞에 응전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쟁터와 같이 결결이 찢어진 상처들,
자연의 자연치유력을 기대하고 의지할 뿐입니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이 나라,
요즘 소득증대다, 펜션이다하여 산자락에 대한 개발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리한 개발로 인하여 사람의 인기척이 닿은 부분은 영락없이 파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한방 얻어맞아야 정신이 차려집니다.
전어가 돌아왔다! 집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왔다!
(술상전어마을의 풍어입니다. 올해 한 몫 잡아야 할긴데.....사진제공 : 변거황)
봄, 도다리
여름, 은어
가을, 전어
겨울, 참숭어
이쯤하면 입에 침샘이 솟구쳐 오르지 않습니까?
하동의 먹거리 사슬입니다.
봄에 향긋한 쑥국에 도다리를 넣어 끓이면 이것 완전 일미입니다.
지난 봄에는 도다리가 잘 잡히지 않아 한 그릇에 2만원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은어로 치면 섬진강은어를 따라올 것이 있겠습니까?
지난 편지에 섬진강 은어 자랑을 해 드렸었는데요,
은어를 보면 우주가 보인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됩니다.
이제 곧 8월 말이 되면 은어는 산란을 위해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가을전어에는 깨가 서말!
집나갔던 며느리도 돌아온다!
전어굽는 냄새를 두고 한 말입니다.
옛날에는 며느리들이 배가 많이 고팠나 봅니다.
전어굽는 냄새에 다시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ㅋㅋ
전어 레시피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듯 합니다.
하나는 전어회 무침입니다.
전어를 얇게 썰어 초장과 상치와 같은 야채를 섞어 버무리고
마지막으로 참깨를 착~ 뿌리면 끝!
깻잎이나 상치에 한입 싸서 넣을 찰라~~~~ 입에는 이미 침이 가득
다른 하나는 전어구이입니다.
뼈가 다 자라고 굵은 전어는 무침보다는 구이다!
통전어에다 칼집을 서너군데 넣고 통소금을 착착~
오븐이나 석쇠에 굽는다.
기름이 톡톡튀기면서 밑으로 쫘악 빠져 내리면 끝!
바로 이 냄새에 며느리들이 돌아오는데,
아 글쎄, 요새 하동을 찾는 전국의 며느리들이 엄청 많다는 소문입니다.
하동에는 전어마을이 있어 매년 8월초가 되면 미식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술상전어마을입니다.
노량해협에서 사천방면으로 바닷길 몇 킬로만 가면 술상항입니다.
비록 작은 항구이지만 전어로 이미 전국에 뜬 마을입니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리아스식 해안,
주변에는 흩뿌려 놓은 듯 작은 섬들....
전어가 좋아할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술상전어가 유명한 것은 술상앞바다의 물살이 아주 거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살에 적응된 은어의 육질이 쫄깃쫄깃하여 다른 곳의 전어와는
완전 차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자! 이쯤하면 이미 미각은 예민해져 있겠지요?
아직도 비는 계속되고, 뙤약볕이 뜨겁기 이를 데 없지만 계절은 이미 가을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가을의 명물인 전어가 맛이 들어가고 있으니까요!
올 가을 특급행복 여행제안!
불일폭포 단풍구경가자!
명품들판 평사리 황금들판도 품어보자!
은빛모래 평사리백사장을 맨발로 걸어보자!
북천 10만평 코스모스와 메밀밭에서 폼 잡고 사진도 찍어보자!
그리고 해 질녘, 노을 속에 술상전어 한 입!
아! 이것이 전부가 아니네!
토지문학제에서 서희와 길상이를 만나자!
올 가을은 바쁘다 바뻐!
(엄마의 속 바지에 숨겨두었던 주머니에서 나오고 있는 "배춧잎"... 자~알 쓰겠습니다)
幸福男의 아주 특별한 날
지난 수요일은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내가 음식을 만들어 혼자 계시는 엄마와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침 일찍 축하전화를 하셨던 엄마가 올해는 캄캄 무소식이었습니다.
아들 생일도 몰라요? 으이구! 우리엄마가 아들한테 관심이 영 없구먼!
아들 생일도 모르고 내가 정신이 영~ 나갔다! 미안해서 어쩌지!
어리광 섞인 저의 투정에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속바지 속의 주머니를 여시더니 시퍼런 돈 5만원을 주셨습니다.
오늘 이것 가지고 직원들과 같이 점심 사 묵어라! 에미가 아들 생일도 모리고 (모르고)! 말이 아니다!
엄마 돈도 없으면서~ 요새 돈 많타. 걱정 말거라!
생선 굽고 미역국도 끓이고 평소보다 몇 가지 반찬을 더하여 생일상이 차려졌습니다.
엄마, 기도 해 주세요!
나 이제 기도도 다 잊으삤다. 아들이 해라!
엄마가 하세요! 아들 생일인데 엄마가 해야 좋지!
몇 번 실랑이 끝에 엄마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오늘은 우리 아들 생일입니다~~~
한마디도 채 끝나기 전에 목이매여 기도를 이어가시지 못했습니다.
무슨 기도를 하셨는지 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식을 향한 애정 가득담긴 엄마의 소원이 절절이 이어졌습니다. 기도가 끝나도 엄마는 한참 눈물을 닦고 계셨습니다.
생일도 기억 못한 자책감, 오래 살아서 자식들의 짐이 된다는 미안함,
어릴 때 잘 해주지 못했다는 후회....
이런 것들을 가지시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밥을 퍼 넣듯이 먹고 출근하기에 바쁜 저를 대문 밖까지 나오셔서 손 흔들어 주시는 엄마....
내년에도 꼭 엄마 기도를 받게 해 주세요!
라고 빌면서 출근길을 향했습니다.
어릴 적 생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비록 화려한 생일상이나 선물은 받지 못했어도 생일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막상 생일이 되면 부끄러움이 앞섰습니다. 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생일상이 차려지고
고깃국과 생선, 쌀밥.... 특별한 대우에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생일을 기념하여 양말이나 배신 (운동화)이라도 사 주시면 아끼느라 신지도 못하고 며칠은 머리맡에 놓고 잠을 자기도 했었습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서서 맞이한 생일은 기쁨 보다는 책임감이 더 앞섰습니다.
오후 무렵에 서울에서, 진주에서 유학중인 아들들로부터 문자가 왔습니다.
아빠 생일 축하드립니다!
다소 의무적인 투의 큰 아들 문자메시지입니다.
땡큐! 고맙다. 좋은 날 되길 바란다!
아부지 생일 축하드립니다. 이 못난 아들이 생일에 선물하나 사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우리를 믿고 음악하는 거 밀어 주셔서 고맙고 ... 항상 건강하세요!
약간 장난기 섞인 작은 놈의 문자메시지입니다.
못나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인데!
고맙다. 잘 하고 있어서 안심이다!
오후에는 직장 동료들이 마련한 작은 파티가 사무실에서 열렸고 고깔모자를 쓰고 생일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 답지되는 축하문자들....
이래저래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마련한 아내,
꼬개 꼬개 숨겨두었던 쌈짓돈과 눈물의 기도를 해 주신 엄마,
의무감이든 장난기든 축하 문자를 보내준 두 아들!
그리고 따뜻한 동료애를 발휘해 준 동료들!
아! 이만하면 저 幸福男 아닌가요?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