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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왜 ‘소통’을 다시 연구하려 하는가
우리는 사회를 이해하는 기본 범주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배운다.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영역을 작동하게 하는 ‘소통(Communication)’은 독립된 기본 범주로 잘 다뤄지지 않는다.

그동안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매스미디어와 언론, 대인관계, 조직 내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광고, 홍보(PR), 마케팅 등 설득 및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영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그러나 소통 자체를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근본적인 조건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아직 충분히 확산되지 않았다.
소통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시공간을 초과하여 늘 존재하기에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은 모두 소통이라는 조건 위에서 작동한다. 정치는 권력을 획득하고 정당화하며 사회적 동의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통을 필요로 한다. 경제는 가격, 계약, 정보, 평판과 같은 신뢰 정보를 주고받으며 작동한다. 사회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축적되면서 형성되고 유지된다. 문화 역시 공동체가 의미를 만들고 공유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과학기술에서 만들어진 지식과 혁신 역시 소통을 통해 검증되고 공유되며 사회에 확산된다.

따라서 소통은 정치·경제·사회·문화와 나란히 놓인 또 하나의 영역이라기보다, 이들 영역이 작동하도록 밑바탕을 이루는 조건에 가깝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인간은 소통 속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도 소통 자체를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그 물의 성질이 달라지고 있다.
AI가 ‘소통의 물’을 바꾼다
기존의 사회과학과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소통의 주체를 기본적으로 인간으로 전제했다. 물론 미디어나 조직 같은 매개체가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말을 만들고 의도를 가지고 판단하며 책임지는 행위자는 궁극적으로 인간이었다.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등장으로 이 전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AI는 단순히 문장을 생성하는 도구를 넘어 질문에 답하고, 정보를 요약하고, 설득을 위한 메시지를 만들며, 협상과 의사결정을 지원한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의 지시에 따라 정보를 탐색하는 수준을 넘어 일정한 목표를 바탕으로 여러 작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인간처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사회적 소통의 과정에 인간 이외의 새로운 행위자가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정치 영역에서는 딥페이크와 AI를 활용한 정보 조작이 여론 형성과 정치적 판단에 새로운 위험을 만든다.
경제 영역에서는 AI가 인간을 대신하거나 인간을 지원하면서 정보 수집, 분석, 거래, 고객응대, 협상 등의 과정에 참여한다.
사회 영역에서는 사람들이 AI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과 정서적 위안을 구하면서 인간과 AI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화 영역에서는 AI가 생성한 텍스트·이미지·음성·음악·영상 등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유통되면서 창작과 소비의 경계도 달라지고 있다.
과학기술 영역에서는 AI가 가설 수립, 데이터 분석, 실험 설계 등을 지원하거나 일부 과정에 참여하면서 지식 생산의 방식 역시 변화하고 있다.
겉으로 보면 서로 다른 현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하나의 공통된 질문이 흐른다.
“누가 말하는가? 무엇을 말하는가? 누가 그것을 믿는가? 그리고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지는가?”
이 질문은 결국 소통의 구조에 관한 질문이다.
AI는 메시지를 만드는 비용을 낮추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속도를 높이며, 이제는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소통의 일부 과정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소통의 주체, 매개, 의도, 신뢰, 책임을 다시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물이 달라지면 그 안에 사는 생태계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AI가 소통의 조건을 바꾸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개별 기술의 성능만 볼 것이 아니라 소통 자체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기술의 언어 너머, 소통의 언어로
지금까지 AI 연구는 주로 기술적 성능과 효율성, 안전성, 정렬(Alignment) 즉 AI의 목표와 행동을 인간의 의도와 가치에 맞추는 문제에 집중해 왔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중요하다.
그러나 AI가 인간의 의도에 맞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AI가 만들어 낸 말과 행동을 인간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신뢰하며, 그 결과에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소통의 문제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조직(Organization)의 관점에서는 이 문제가 더욱 선명해진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가운데 CCO(Communication Constitutes Organization) 관점은 조직을 이미 존재하는 고정된 실체로만 보지 않고, 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구성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
이 관점에서 보면 AI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회의 내용을 요약하고, 고객의 문의에 답하고,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도구 하나가 추가되는 문제가 아니다.
누가 말하는가, 누가 판단하는가, 누가 결정하는가, 권한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조직의 기본적인 소통 구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AI 도입을 단순한 업무 자동화로만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AI는 조직의 소통 방식과 의사결정 구조, 권한과 책임의 배분까지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선언이 아니라 질문으로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미디어학 등에서도 이미 AI와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는데, 왜 굳이 ‘소통’을 앞세워야 하는가?
맞는 지적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려는 것은 단순히 “소통이 중요하다”는 선언이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에 소통을 통해 새롭게 제기되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AI가 개입하면 소통의 구조와 신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발화 주체와 책임 주체가 분리될 때 메시지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인간과 AI가 협업할 때 의도와 책임은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
AI가 조직의 소통에 참여하면 조직의 정체성과 권한 구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AI가 만든 메시지와 인간이 만든 메시지를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구별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AI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지원했을 때 누가 설명하고 책임져야 하는가?
다른 학문이 AI의 기술적·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를 연구한다면,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기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의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계와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며, 책임이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탐구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소통 연구의 새로운 역할을 찾을 수 있다.
함께 질문을 만드는 네트워크
AI 시대의 소통 문제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 현장의 변화를 가장 먼저 경험하는 기업과 조직의 실무자,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공공·정부 관계자, 소통 환경을 다루는 언론인, AI 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가 함께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한국커뮤니케이션연구회(KNCS, Korea Network for Communication Studies)는 바로 이러한 질문을 함께 던지고 답을 찾아가기 위한 네트워크다.

KNCS는 이미 정해진 답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AI 시대에 소통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연구하고, 소통 현장과 연결하며, 필요한 경우 새로운 기준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는 물론이고 PR·광고·마케팅·인사·조직관리·정책·언론·AI 기술 등 소통의 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연구와 논의에 참여할 수 있다.
AI 시대, 소통은 더 이상 무심코 지나치는 배경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통이라는 물속에서 살아왔다. 이제 그 물의 성질이 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헤엄치고 있는 물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방향을 함께 질문하고, 연구하고, 기준을 만들어 가야 한다.
네이버 카페, 한국커뮤니케이션연구회
매니저 오익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