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골목에 “땡땡땡” 신호음이 울립니다. 역무원이 나타나고 ‘정지’ 안내판이 달린 차단기가 내려와 지나던 사람들을 세웁니다. 철길 위로 기차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차단기가 올라가고 사람들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30미터나 걸었을까, 아주 얕은 비탈 위로 다시 철길이 나타납니다. 이번 건널목은 조금 작아서 차단기가 없습니다. 할머니 한 분이 양쪽을 두리번거리고는 천천히 건너갑니다.
철길 옆으로 허름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용산방앗간·한강빨래방·동래파전·연흥철물·여천식당……. 키가 훤칠한 장정은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낮고 자그마한 가게들입입니다. 동요에 나오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이런 모습이었을까요. 2012년 서울의 이 골목은 60년대와 70년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의 백빈건널목. 용산역과 서부이촌동 사이에 위치한 경원선(중앙선) 지하철 건널목입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삼각백빈 건널목이 있습니다. 경원선과 경부선을 이어주는 용산삼각선이 지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골목을 ‘땡땡 거리’라고 부릅니다. 철길 앞에서 조금만 고개를 들면 아파트 군과 빌딩숲이 주변 풍경과 섞여 한 눈에 들어옵니다. 비로소 여기가 현대 서울의 한 공간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백빈건널목 주변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켜 영화·드라마·뮤직비디오의 단골 촬영지가 됐습니다. 도심 속 시골 풍경에 매력을 느낀 사진애호가들도 자주 나옵니다. 근래에는 현대적인 카페와 주점이 하나 둘 들어섰습니다. 점심시간이면 건너편 고층 빌딩에서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와 이 예스러운 골목의 식당들을 찾습니다.
방문객은 낭만을 느끼지만 주민은 불편한 점도 있습니다. 철길 옆에 사는 주민들은 하루 186차례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소음을 들어야 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철길 건널목이 힘겹고 위험한 장애물입니다. 담당 역무원은 신호를 무시하는 운전자와 방문객을 단속하는데 애를 먹습니다.
용산은 ‘국제업무지구 조성사업’을 비롯한 개발 문제로 항상 시끌시끌한 지역입니다. 여기도 언젠가는 개발 될 것입니다. 건물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개발 보다 지역이 갖고 있는 장점을 살려 재생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화기획자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지역의 문화예술적 정취를 살리고,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한다면 더욱 매력적인 동네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