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리뷰



재약산 재악산 천황산의 표충사 영정사 죽림사
TheFestival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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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악산표충사(載岳山表忠寺)는 밀양 단장면 구천리 25 에 있으며

재약산(載藥山) 기슭에 있는 사찰이고,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末寺)란다.

산 이름도 두 가지고 건물 이름도 두 가지다. 재약산載藥山과 재악산載岳山,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사表忠寺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유정스님 사명대사의 충훈을 섬기기 위해 만든 사당에서 이름이 비롯되어 표충사(表忠祠)가 된 것이다. 

안내판에는 천황산표충사(天皇山表忠寺)라고 되어 있어 더욱더 외우기 힘들어지고 역사문화 공부하기가 싫어진다.




사명대사(泗溟大師 1544~1610)는 중종39년 10월 17일 태어나 광해군2년 10월 12일 합천 해인사에서 입적하셨다. 

태어날 당시 출생 주소는 경상도 밀양도호부 상서이동면 고라리 (現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42, 속명은 임응규이고 법명은 유정이며, 당호는 사명당이다. 1561년 승과에 급제하고 1575년에 묘향산으로 들어가 수행했으며, 임진왜란 때 승병을 모집하여 휴정(서산대사)의 휘하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승군도총섭이 되어 평양을 수복하고, 의령에서 도원수 권율과 함께 왜군을 격파했다. 정유재란때 울산의 도산과 순천 예교에서 큰 전공을 세웠다.

1604년(선조 37년)에는 왕명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 강화를 맺고, 다음해에는 조선인 포로 3,000여명을 인솔하여 귀국했다. 오늘날 호국불교라는 말이 있게끔 한 불교계의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죽림정사(竹林精寺)를 신라 흥덕왕 4년때 인도 스님인 황면(黃面)선사에 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건하게 된다. 



그리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하였다. 국가보물인 삼층석탑도 원래는 지금의 자리에 세워지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표충사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로 시작하여, 829년(흥덕왕 4)에 영정사(靈井寺)로 개명이 되었다.

1839년(헌종 5)에 지금의 밀양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의 이름을 다시 표충사(表忠寺)로 바뀌었고, 가람 배치도 크게 변했다.



표충사가 죽림사에서 영정사로 바뀔 때 이야기가 있다.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여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고, 사찰명을 영정사라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물을 영정약수(靈井藥水)라 하여 지금도 마실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 표충사는 보우, 해린, 일연, 천희 등 사대 국사가 주석하며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국내 제일의 선찰로 번창했고, 일연 국사가 삼국유사를 이곳에서 완성했다고 전한다.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표충사당이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된 채로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1838년(헌종 4) 사명대사의 8세손인 천유(天有)가 예조에 보고하여 부사 심의복(沈宜復)의 도움으로 1839년에 이미 폐사가 된 영정사 자리(현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표충사의 포토존은 단연 배롱나무 포함 사찰의 건물들이다. 

봄의 푸르름, 여름의 계곡물,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으로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표충사.

그 중 최고의 여름 풍경인 붉은 배롱나무 꽃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즐거운 감상 뒤에 시전2길 내비찍고 나오면 산채백반이나 더덕구이정식으로 입맛을 돋우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주변에 민박집 팬션 등 숙박지도 참 많아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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