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그림자 마당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이불속청은 기억 속에서 하얗게 날리는데 이제 나는 거기 들어갈 수 없다.
하얗게 들끓는 기억속의 구더기들 그 속에 내가 있다.
구더기가 번데기를 거치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아간다는데.
병원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죽는다.
적나라한 그 모습을 다 기억하고 있는 하얀 벽이 울고 있다.
어린 기억 속에서 건져 올린 ‘하얀방’ 앞에 이미 어른이 된 당신이 서있다.
당신은 과연 ‘하얀방’을 노크할 것인가?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당신의 기억들은 되살아날까?
3분마다 한명씩 들어가는 <유진규의 하얀방>은
하얀 미로 속을 헤매면서 4개의 설치를 만나게 된다.
날리는 이불속청을 이미지한 ‘그림자의 방’,
살아있는 구더기가 꿈틀거리는 ‘구더기의 방’,
삶과 죽음의 소리가 벽속에서 들려오는 ‘기억의 방’
그리고 유진규가 기다리는 ‘막걸리의 방’ 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끝을 알 수없는 하얀 골목을 혼자 다녀야 하므로,
폐쇄공포증, 정신분열증, 자폐증, 심약증 등을 가진 사람은 들어올 수 없다.
<유진규의 하얀방> 세 가지 컨셉
1. 어렸을 적 기억에, 앞마당에는 언제나 하얀 이불속청과 기저귀가 바람에 날고 있었다.
그 속에서 숨기놀이를 하면 하얀 이불속청은 미로가 되었다.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길을 잃고 그림자가 되었다.
2. 어렸을 적 기억에, 골목길에는 죽은 쥐의 몸을 구더기가 하얗게 덮고 있었다.
쥐가 없어질 때 쯤 구더기들도 깜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땐 몰랐지만 변태되어 하늘로 날아간 것 이었다.
3. 어렸을 적 기억에, 병원은 하얀색이었다. 하얀 건물, 하얀 복도, 하얀 병실, 하얀 침대,
하얀 수술실, 하얀 마스크, 하얀 의사, 하얀 간호원, 하얀 붕대, 하얀 약, 하얀 냄새.
거기서 하얀 강보에 싸인 동생을 보았고, 하얀 시트에 덮힌 시체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