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별초가 대몽항쟁을 위해 진도에 쌓은 용장산성
삼별초 항쟁
고려 원종11년 몽고의 침략으로 강화도에서 대몽항쟁을 벌이던 삼별초는 고려정권이 몽고에 항복하며 치욕적인 강화조약을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고려의 장군 배중손이 이에 불복하고 삼별초를 이끌고 진도로 옮겨 용장성을 구심점으로 개경정부와 몽고군과의 항쟁을 이어갔다.
▲ 삼별초는 용장산성을 거점으로 해안에 석성을 쌓아 개경정권과 몽고 연합군의 대규모 공격을 2차례 막아냈다.
삼별초가 진도로 옮겨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우선 물살이 빨라 수전에 약한 몽고군이 쉽게 쳐들어오기 힘들고 육지와 가까워 수시로 드나들며 대몽항쟁을 펼치기 용이한 지리적여건을 지녔다. 게다가 경상도와 전라도의 조세를 나르던 조운선이 통과하는 길목으로 개경정부를 압박 할 수 있었다. 진도는 3번째로 큰 섬으로 옛부터 한 해 농사로 3년을 먹고도 남았다고 할 정도로 비옥한 섬이였다. 강화도에서 대몽항쟁을 펼처오던 삼별초에게 남도 지역을 장악 할 수 있는 거점으로 삼기에 진도는 부족함이 없었다.
▲ 용장산성 성터. 단기간 사용된 성이였지만 도성으로 갖춰야 할 행궁지와 유적이 남아있어 도읍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별초는 진도에 옮겨와 고려왕족인 승화후를 왕으로 추대하여 개경정부를 부정하고 고려의 정통성을 이어가고자 했다. 용장성을 쌓아 침입에 대비하며 세력을 쌓기 위해 전라도 연해 지역을 비롯해 제주도, 경상도 남부 연해 까지 지배권을 확대해 나갔다. 하지만 진도정권은 봉기 1년만인 1271년 5월, 몽고와 고려관군의 연합공격에 배궁손 장군과 승화후 모두 목숨을 잃고 패퇴하여 남은 세력은 제주도로 옮겨가게 된다.
▲ 용장산성내 홍보관에는 삼별초의 대몽항쟁에 대한 전시자료 및 시청각실을 운영하고 있다.
▲ 용장사 내 고려시대 약사불상
용장산성에는 용장사라는 사찰이 있다. 삼별초가 진도에 도착하여 임시로 기거했던 사찰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용장산성을 쌓고 도읍으로 정했다. 이곳에는 총높이 1.95m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고려시대 약사불상이 있는데 옛 용장사의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