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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에세이 (58)
느리게살기 기자    2012-02-26 23:39 죄회수  5355 추천수 2 덧글수 3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강에 눕다....<i love 섬진강>)


봄이 포효(咆哮)하다!

(진안군 백운면, 마령면, 성수면)


팔공산 데미샘,

이는 나의 관념의 시원이었고 실질적인 섬진강의 근원이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날, 20센티미터가 넘는 눈길을 뚫고 시원에 도전했었다.


데미샘을 찾아 나서기 전까지 줄곧 그의 모습은 내 머릿속 상상의 공간이었다.

마치 옛날 부모의 등에 떠밀려 선을 보게 된 사람들의 심정이랄까?


나의 반쪽이 될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그런 것과도 같을 것이다.


성탄절 선물이라도 되듯이

이날, 시원을 향하는 나에게 하나님은 백색의 천지를 허락해 주셨다.

그것도 첫눈으로....


데미샘으로 올라가는 오솔길,

꽉 말라버린 나뭇가지에 걸린 눈송이,

그 첩첩이 쌓인 나무사이로 뻥 뚫린 파란 하늘,

땅 밑으로 흐르는 가느다란 물길,

들릴 듯 말 듯 작은 계곡물 소리,

하늘과 맞닿은 산등성은 중학교 가기 위해 이제 막 빡빡머리 소년과 같아 보였다.


데미샘에 도착하면 천둥이라도 칠 줄 알았다.

폭포수와도 같은 물이 떨어질 줄 알았다.

장엄하고 장중한 사운드라도 있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섬진강의 시원인 데미샘은 있는 듯 없었고 없는 듯 있었다.


그래 이것이 섬진강이구나!

네 모습이 단지 나의 상상과 같았다면 넌 섬진강이 아니지!


나의 뒤통수를 쳐 버리듯 섬진강의 시원은 작고 보잘 것 없었다.

세상이 얼마나 겉모습 치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

나 또한 그랬었다.


모름지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강이라면

적어도 섬진강쯤 된다면

그의 시원 또한 천둥번개정도는 쳐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에이 형편없는 놈, 정신 좀 차려라!

내가 그를 것 같았냐?


이 땅의 구원주로 오셨던 예수님도 오는 듯 마는 듯

소리 없이 오시지 않았는가?

그의 고향에서는 사람취급 받지 못했고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그분의 말씀은 사람들의 관념을 넘어서셨다.


그의 첫 모습을 보고 나는 나자빠져 버렸다.


그래,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강, 제대로 된 시원의 모습이 아닐까?

그의 모습이 장중하고 장엄하고 위대했었더라면

섬진강이 과연 나의 섬진강이 될 있었을까?


고맙고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섬진강 소품....섬진강길에 만난 선물들입니다)

 

그 이후 나는 거의 정확히 말하자면 32킬로미터, 80리를 걸었다.

아스팔트길은 완전히 배격했다. 오로지 물길로만 걸었다.

속도는 거의 없었다. 고작해야 하루 십리 길을 걸었을 뿐이다.


갈대와 같이 놀았고 바위와 눈 마주쳤다.

태양에 반사되는 눈(雪)에 얼굴은 갈 때마다 그을려졌었다.


섬진강사람들은 그들이 강인지, 강이 그들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섬진강과 너무 닮아 있었다.

휘감아 도는 강,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마치 갓난아기의 실핏줄처럼,

엄마와 아이의 탯줄처럼 시작되었던 섬진강은

내려갈수록 성숙에 성숙이 더해져 갔다.


절반 이상의 섬진강은 눈으로 덮여 있어서 그의 모습은 명확했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투명인간 같이 오장육부가 다 보였다.


낮고 진솔한 너의 모습,

그래서 가도 가도 끝이 없었고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았다.


삼심리쯤 되는 지점, 아마 마령면 쯤 될 것이다.

강이 울기 시작하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실핏줄과 같은 강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소리였다.


그는 늘 베이스, 콘트라베이스처럼 저음이었다.

때로는 가슴 철렁할 정도로 웅장한 사운드였고

또 때로는 귀를 의심할 만치 들릴 듯 말 듯 했다.


분명한 것은 내려갈수록 그의 사운드는 듬직, 단호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몰랐었다.

겨울 같은 겨울을 보내본 지 수십 년이 되었기에

어릴 적 냇가에서 썰매 지칠 때 들었던 경험이 전부였다.

썰매를 타기 위해 새벽같이 달려갔었던 시냇물은 한번씩 그렇게 울었던 것 같았다.


그 소리 들었어요? 섬진강이 우는 소리!


늘 나와 같이 답사에 나섰던 아내의 질문에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가슴에 그 울음은 공명되고 있었다.

아니 놀란 가슴처럼 진동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는 자주

아직도 섬진강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섬진강이 울다!

정말 우는 소리일까?

운다면 왜 그를까?


아냐, 우는 소리가 아냐!

섬진강은 그렇게 사사로이 우는 강이 아냐!

나는 혼자 마음을 고쳐먹었다.


우는 것이 아니라 포효야! 봄을 부르는 포효!  

(봄을 부르는 강의 포효....그 우렁찬 소리가 들리시는지요?)

 

어느 유명한 시인은 봄은 2월의 베개 밑으로 온다고 노래했었다.

그 세밀한 감각에 혀를 내두를 뿐이지만,

나에게 봄은, 적어도 내가 섬진강에서 들은 봄은 포효 그대로였다.


봄을 본다의 준말이라고 했다고 하지만

봄은 시각보다 먼저 청각으로 울리는 것이 아닐까?


봄은 언제부터 시작일까?

얼었던 계곡이 풀리고 베개 밑으로 졸졸 흐르는 소리부터일까?


나는 섬진강 그 물길을 따라 걷다 내 조용한 가슴을 진동시켰던

섬진강의 포효에서 봄은 시작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봄은 섬진강에서 출발한다!

이미 섬진강은 봄이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섬진강,데미샘,팔공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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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주   2012-02-27 14:23 수정삭제답글  신고
새봄을 부르는 섬진강의 포효..으르렁대는 소리를 빨리 듣고 싶은데, 봄이 참 더디 오네요~?
천상녀자   2012-02-26 23:50 수정삭제답글  신고
눈 덮인 섬진강 얼음위에 예쁘게 글씨 써 놓고 옆으로 비스듬이 누워 있는 작가 쌤!! i love 섬진강~??  OLL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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