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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에세이 (74)
느리게살기 기자    2012-06-17 16:35 죄회수  3822 추천수 0 덧글수 1 English Translation Simplified Chinese Translation Japanese Translation French Translation Russian Translation 인쇄  저장  주소복사

 

(나 집으로 돌아가리 내일 일은 내일 하리)


부딪치고 깨어져야 강이다.


바다는 가슴을 뛰게 하고

산은 마음을 비우게 하며

강은 사람을 평정시킨다.


바다는 청년을 부르고

산은 황혼을 손짓하나

강은 인생의 묘미를 아는 중년과 궁합이 맞다.


바다는 땀을 태우고

산은 땀을 식히나

강은 열정의 온도를 유지시킨다.


바다는 자랑하게 하고

산은 은둔하게 하나

강은 나를 그 자리에 있게 한다.


바다는 미래를 꿈꾸게 하고

산은 과거를 잊게 하나

강은 오늘을 살게 한다.


그러나

산은 강을 낳고

강은 바다를 키우며

바다는 산을 품는다.

그래서 산과 강과 바다는 결국 하나가 아닐까?

온 만물이 하나이듯이...



이 셋 중에서 나는 강을 가장먼저 선택했다.

가까이 있어서 강에 젖어 살아왔던 나의 어쩔 수 없었던 운명이기도 하지만

강에 끌림이 있었던 것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그 다음이 산이다.

내가 살고 싶은 곳은 강이 살포시 내려 보이는 산자락의 숲 속이다.



구담마을과 이동마을을 휘감아 도는 섬진강을 따라 돌아서서

나는 현란한 바위들의 축제라도 벌어진 듯한 장군목에서

지상 최대의 바위 쇼를 관람하고 있다.


사람얼굴을 닮은 바위,

날아가는 새, 항아리, 비행기, 꽃과 구름, 호랑이와 토끼, 돌고래....

후에 들어보니 요강바위도 있다고 한다.


그 크기도 각양각색이어서 집채보다 더 큰 것도 있고

품에 안으면 꼭 안길 것 같은 아담한 것들도 있다.

 

(이들은 바위가 아니라 혼이 담긴 또 하나의 형상이었다)


얼마나 물에 오래 젖어 있었으면 바위 색깔들이 하얗다.

수 만년 세월동안 물에 씻기고 거품이 내려앉고 태양에 달구어져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리라!


용궐산과 무량산 사이로 무량장골이 두 봉우리를 나누고,

용궐산 정상부위를 섬진강에서 올려다보니

하얀 도배지로 산을 도배 해 놓은 것 같이 바위가 하얗다.


건너편은 두류봉과 생이봉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높은 산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산세가 험악하다.


그래서 생겨난 이름이 장군목인지도 모르겠다. 장군들의 겨룸인가?


그동안 섬진강은 휘감아 돌긴 했지만

이처럼 험한 바위계곡과 험준한 길을 만나지 못했다.


차라리 옥정호에서는 흐르지 못함에 답답했었고,

마령에서는 느림에 지루했었으며

강진에서는 옛 정취에 빠져 시간가는 줄 몰랐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고향 구담마을을 돌아서자마자

강에 긴장이 흐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

병사들의 함성과 장수들의 지휘소리,

말이 달리고 포성이 울리며, “전진하라, 후퇴하라...”


험준한 양 계곡사이에서 바위들의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

용궐산과 무량산 그리고 두류봉과 생이봉의 진두지휘로

계곡이 거대한 회오리와 같은 함성으로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군웅이 할거라도 하는 듯 온갖 바위들의 양편으로 나뉘어 전투가 벌어진 것은 아닌가?


그 거리가 자그마치 십리쯤은 되는 듯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인다.

강이라기보다는 바위들의 처절한 전장으로 연상될 정도다.

 

이 처절한 싸움터를 넘어야 또 평화로운 물결을 만날 수 있다.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바위,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전사를 닮은 바위,

마치 분지에 올라온 것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

포로라도 된 듯 덩굴 풀에 칭칭감겨 어디론가 끌려가는 듯한 바위,

갈라진 작은 틈새를 뚫고 생명의 꽃을 피워내는 절체절명의 바위,

집채보다 더 커서 바위라기보다는 작은 산이 내려앉은 것 같은 바위...


물결이 심할 때는 튕겨 나가고 쓰러지고,

회오리처럼 바위틈으로 휘감아 빠져들고,

포말로 부서져 형태도 없어지고,

철썩거리는 소리도 없이 찢어지고 부딪쳐야 제 길을 갈 수 있다.


적어도 강이라면 개울과는 달라야 한다.

적어도 섬진강 쯤 되면 그 몸 하나쯤은 찢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소리 없이 고요히 흐르기만 한다면 그것은 강이 아니다.


아파야 하고 찢어져야 하고 포말로 가루가 되어야하고,

폭우에는 넘쳐흘러 배고픈 사자라도 된 듯 광포해야 하고,

휘감아 돌때에는 어지러울 정도로 빙글빙글 돌아야 하며,

가뭄에는 물 한 방울 없어 거북이등처럼 갈라지는 아픔을 겪어야 하고,

한 겨울 북풍 회오리에 온 몸이 잦아들고 시리고 얼어야 한다.

 

그것이 강이고, 그렇게 살아온 것이 섬진강이다.

그래서 섬진강은 나의 스승이다.


섬진강,

앞으로 바다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더 찢어지고 상처를 입어야 하는가?

그러나 인생이 그렇듯 부딪치고 찢어지고 상처입어야 강이다.


그래서 강이 아름답다.


<하동에서 조문환 드림> 

태그  하동 조문환,섬진강은 나의 스승,섬진강에세이,두류봉,생이봉,옥정호,얼굴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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