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의 시작 오목대, 이목대
오목대는 1380년 삼도순찰사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중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를 열었던 곳으로 1900년(고종 37) 고종이 친필로 쓴 ‘태조고황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畢遺址)’가
새겨진 비가 세워졌다.
이목대는 태조의 5대조인 목조 이안사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으로, 고종이 직접 쓴 비문을 통해, 조선 왕조
의 시조인 이안사가 이곳에 살았었음을 알게 되었다
오목대 이목대를 본후 관광안내소를 지나 조금 가다보면 태조로가 나오는데 길의 정취를 느끼면서 걷다보면
바로 전동 성당이 나온다..
1889년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보드네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V.L.프와넬 신부의 설계로 건물이 완공
되었다. 호남지방의 서양식 근대건축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것중의 하나로, 평지의 성당으로는 대구 계산동 성당과 쌍벽을 이룬다
- 전동성당은 윤지충 권상연이 모친의 죽음후에 가톨릭식 의식에 따라 위패를 폐하고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풍남문에서 처형당했는데, 풍남문이 있던자리에 성당을 세워 순교지로도 알려져있다
전동성당을 지나면 경기전이 보인다..
경기전은 조선왕조를 연 태조의 초상화, 즉 어진을 모시기 위해 태종 10년(1410년) 지어진 건물이다.
전주, 경주, 평양 등의 어진 봉안처를 처음에는 어용전이라 불리었는데, 태종 12년(1412년)에 태조 진전이라 하였다가 세종24년(1442년)에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 평양은 영승전이라 각각 칭하였다. 경기전은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광해군 6년(1614년) 중건되었다. 경기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 봉안과 함께 전주사고(史庫)가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안고 있다.
경기전을 지나서 최명희문학관을 들려 구경한후 나오면 토담길이 우리를 반겨준다.
흙으로 된길은 조금 거칠어보이지만, 어느덧 따뜻하게 우리를 맞아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전주곳곳에는 은행길이 많은데..
한옥마을에는 600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있다.
우뚝 서있는 은행나무는 전주의 오랜역사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은행나무 밑에는 원래보다 작은 은행나무 한그루가 더 자라고
있는데 확인결과 은행나무가 늦둥이를 낳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곳에서 심호흡 5번하면 늦둥이를 가진다는 속설이있다.
한옥마을에는 소개한 것들 말고도 더 많은 문화재와.. 체험관등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하루에 당일치기로 모든 곳을 돌아보려 하기 보다는, 한옥마을 내에서 혹은 주변 민박이나 팬션에서 하루정도 묵은후에 이틀에 걸쳐 돌아보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