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첫 일출 아차산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 뜨는 곳
평강공주와 온달장군의 사랑이 얽힌 아차산!!
서울의 우수경관 조망명소,자연학습장,둘레길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치열한 다툼이 있던 장소로서, 아차산성이 있었고, 고려때에는 강호의 이상향으로서 멋진 강변의 풍경을 가져 여기에 쌍수정(雙樹亭)을 세워 광나루 강촌을 오르내리며 농로·어옹들과 인사를 나누고 시심(詩心)을 돋울 수 있어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던 곳이다.
또한 불도를 닦기 위한 도량(道場)으로 은석사(銀石寺)·범굴사(梵窟寺)·영화사(永華寺)가 있었으며 강나루 쪽으로는 백중사(伯仲寺)가 있었다. 아차산 자락인 용당산에는 양진사(楊津祠)가 있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 뱃길과 어촌의 안녕을 빌기도 하였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산책과 운동을 겸해 찾는 시민공원으로서 이용되고 있다. 특히 조선 중기까지도 이 일대는 목장으로만 개발되었을 뿐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 하였다. 이 시절에는 아차산, 용마산 일대에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이 사냥을 할 때 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또 아차산 앞쪽으로 자리잡고 있던 광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면서 아차산을 바라보던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아서 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시로 읊기도 하였다.
사적 제234호
아차산성(阿且山城)
홍련봉·아차산 보루와 함께 남한 최대의 고구려 유적지
서울시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해발 285m)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의 중앙에 위치하는 삼국시대 산성이다.
내외협축의 석축으로 된 성벽의 전체 둘레는 1,038m이며, 성벽의 높이는 외벽이 약 8m, 내벽은 5m 정도이다. 성벽의 폭은 매우 넓은 편인데, 북벽의 경우 바닥부의 폭이 약 8m이고 성벽 상단부의 폭도 5m정도이다. 성벽의 외측 하단에는 별도의 석재를 이용하여 성벽을 보강하여 쌓은 외벽보축성벽이 확인되며, 성벽 상단에서는 구조물을 확인하기 어렵다. 성 내부에서는 몇 개소의 건물지가 확인되었으며, 동문지와 남문지를 비롯하여 연못과 배수시설의 흔적도 남아있다.
1998년과 1999년 아차산성에 대한 조사결과 많은 양의 토기류, 기와류, 철기류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신라에 의해서 설치된 한산주와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북한수국해구(北漢受國蟹口)…” 등의 명문이 확인되는 기와를 비롯하여 인화문토기, 각병 등의 신라계 유물들이 주로 확인되었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등의 자료에 의하면 백제에 의해서 초축되고 운영되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고구려와 군사적인 충돌이 벌어지고 백제의 개로왕이 전사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에 의해서 건립되고 고구려와 이후 신라에 의해서 사용된 것으로 생각이 되지만, 지금까지의 고고학적인 조사 성과로는 아차산성의 정확한 성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다만 아차산성은 삼국이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역사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차산 안심(安心) 둘레길
걷기의 명소로 자리잡은 아차산 둘레길은 구민이 이용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조성된 길이다. 평강교(시작지점)에서 중곡지구(용마)까지 총 3.8㎞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상의 지친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심속 힐링을 만끽할 수 있다.(소요시간 : 90분)